"출연진 안 중요해… 신나게 놀고 열광하러 왔을뿐"

  • 인천=송혜진 기자
  • 박소영 인턴기자(고려대 국문과 4년)
  • 김수현 인턴기자(숙명여대 문화관광학과 3년)

입력 : 2009.07.27 03:38

사흘간 9만명 … 이천·인천 록페스티벌에 가다
소풍 삼아 나온 가족 등 30~50대 참여 크게 늘어

전쟁 속에서도 팬들은 분열하지 않았다. 공연기획사들의 이해(利害) 다툼 속에서도 페스티벌을 즐기려는 사람은 오히려 더욱 불어났다. 충돌이 빚어낸 뜻밖의 수확이었다.

지난 24일부터 경기도 이천인천 송도에서 각각 열렸던 '지산밸리 록페스티벌'과 '인천 펜타포트록페스티벌'. 경쟁하듯 같은 날짜에 열린 두 음악축제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도 많았다. 하지만 지난 사흘 동안 두 행사가 불러 모은 관객 수는 총 9만여명. 지난 2008년 인천 펜타포트록페스티벌이 불러 모은 관객 수는 5만여명이다. 록 음악 축제에 참가한 관중이 두배 가까이 늘어난 셈. 음악 관계자들이 '땅 따먹기' 하듯 매표 경쟁을 하는 동안에도 관객들은 스스로 세를 불리며 그들만의 축제를 열어나간 셈이다.

초여름 밤은 환호로 들썩였다. 24일 경기도 이천에서 열린 ‘지산밸리 록페스티벌’에서 록밴드 ‘위저(We ezer)’가 무대에 나오자 관객들이 열광하고 있다./연합뉴스
"라인업보다 중요한 건 분위기다"

25일 인천 펜타포트록페스티벌. 미국 하드코어 록 그룹 데프톤스(Deftones)가 무대에서 포효하자 1만여명의 관객도 '공중부양' 하듯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같은 날 열리는 '지산밸리 록페스티벌'에 관객을 대거 뺏겨 썰렁한 분위기가 될 거라는 당초 우려와 달리 공연장은 흥분으로 술렁이고 있었다. 충남 서산에서 왔다는 이태원(29)씨는 "관객 수가 작년에 비해 조금 줄어든 듯하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음악을 즐기러 왔다"며 "해외 아티스트가 누가 나오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놀러 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김주연(34)씨도 "외국 아티스트가 적어 조금 아쉽지만 부활 같은 밴드 공연을 볼 수 있어서 왔다. 함께 합창하고 놀 수 있는 장소라면 어디든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기도 이천 지산에서 열린 축제도 성황(盛況)이었다. 24일 '폴아웃보이(Fall Out Boy)' 보컬리스트 패트릭 스텀프(Stump)가 서툰 한국말로 "안녕, 코리아!"를 외치자 관객 1만5000명은 일제히 "안녕!"을 외치며 화답했다. 작년 인천 축제에 이어 올해 지산을 찾아왔다는 강유나(20)씨는 "라인업(출연진)을 보고 온 건 아니다. 노래를 몰라도, 아는 사람이 없어도 어깨동무하고 합창할 수 있는 게 음악축제의 좋은 점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25일 인천 펜타포트록페스티벌에서 공연하는 미국 록 그 룹 ‘데프톤즈(Deftones)’./예스컴제공
마니아들만의 축제? 가족 단위 관객 크게 늘어

예년보다 30~50대 관객이 크게 늘어난 것도 특징. 인천 펜타포트록페스티벌 이진영 실장은 "30~50대 관객이 작년보다 30%가량 늘었다. 가족 단위 관객도 많고 할머니 관객도 눈에 띈다. 록 페스티벌은 젊은 마니아층만 즐기는 축제라는 인식이 많이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공연장엔 도시락과 돗자리를 싸 들고 나와 여가를 즐기는 가족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지산에서 만난 정은형(40)씨는 "록 음악도 좋아하지만 잔디밭이 좋아서 아이들과 함께 나왔다. 무대 앞에서 열광하는 사람만큼이나 맥주와 김밥을 먹으며 토요일 오후를 만끽하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고 인천에서 만난 금유석(54)씨는 "작년부터 휴가 삼아 이곳에 와서 텐트 치고 논다. 헤비메탈은 잘 모르지만 온 가족이 소풍 삼아 나왔다"고 말했다.

"3일 동안 우리는 일탈을 한다"

음악보다 일탈(逸脫) 그 자체의 기쁨을 누리려는 이들도 많았다. 비슷비슷한 옷차림을 거부하는 건 축제의 시작. 여학생 세명은 병원 환자복을 입은 채 당당히 돌아다녔고 '전쟁 끝…평화 시작'이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잔디밭을 뒹구는 남학생들도 있었다. "기쁨을 나누러 왔다"며 목에 붉은 망토를 두르고 사람들을 껴안는 '프리 허그(Free Hug)' 족도 있었다.

어깨에 가짜 날개를 달고 머리엔 깃털장식을 붙인 호주 출신 카일라(Kaila·24)씨는 "한국 사람들이 가장 유쾌해지는 때가 바로 이 여름 음악축제 시간이라는 소문을 듣고 일부러 찾아왔다"며 웃었다. 이들에게 축제는 장소와 인종을 초월한 파티였다.

25일 오후 7시. 그린 스테이지에 오른 '윈디시티'는 음악에 맞춰 천천히 몸을 움직이는 관객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여기가 천국이네요. 아니 여러분이 천국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