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발레는 싫어" 지젤, 창녀가 되다

  • 박돈규 기자

입력 : 2009.07.22 23:07

내달 공연서 파격적 안무 선보이는 제임스 전
"미혼모에 에이즈까지… 슬픈 운명 현실적 접근"

너무 놀라지 마라. 발레 《지젤》의 여주인공 지젤이 창녀가 된다. 푸르스름한 달빛 아래 흰 베일을 쓰고 춤추는 윌리(처녀귀신)들의 군무(群舞)도 온데간데 없다. 붉은 조명과 창녀들이 있을 뿐이다. 이렇게 파격적인 모던 발레 《지젤》을 안무한 제임스 전(50)은 "착하기만 한 발레, 탐미주의를 거부한다"고 했다.

"사는 것도 힘든데 매일 같은 동작만 하면 더 괴롭잖아요. 춤도 예술이고 모방만 할 수는 없어요. 예쁜 옷(튀튀) 안 입어도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늙어도, 키가 작아도, 몸이 마르지 않아도 괜찮아요.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름다움이 훨씬 파워풀합니다."

《지젤》은 시골 처녀 지젤이 약혼녀가 있는 귀족 알브레히트와 사랑에 빠지면서 비극으로 치닫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배경을 현대로 옮긴 제임스 전은 ①지젤과 알브레히트가 이복남매이고 ②알브레히트로부터 배신당한 지젤이 그의 아이를 낳고 ③오갈 데 없는 지젤이 창녀촌으로 흘러들어가고 ④에이즈에 걸려 죽어가면서도 모두를 용서한다는 흐름으로 새 물길을 낸다. 그는 "갈 곳 없고 의지할 데 없는 지젤을 현실적으로 다뤄보고 싶었다"며 "돌고 도는 인생, 거부할 수 없는 숙명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젤》2막에서 창녀가 된 지젤의 의상 스케치(사진 왼쪽), 포즈 하나를 만들어도 이렇게 낯설다. 모던 발레《지젤》을 안무한 제임스 전은“나는(원작을) 재해석한다. 재미있으니까”라고 했다.(사진 오른쪽)/강현동 인턴기자(광주대 사진과 1년)

서울발레시어터(SBT) 상임안무가 제임스 전은 특별하다. 2001년 미국 네바다발레단에 로열티를 받고 안무작 《Line of Life》를 팔았다. 발레 수출 1호였다. 미국 줄리어드 무용과를 졸업한 그는 국립발레단에서 춤출 때부터 개성 강한 무용수였다. 안무가로서도 《호두까기 인형》 《코펠리아》에서 인물과 상황을 뒤집는 감각을 보여줬다. 이번 《지젤》에서는 지젤을 짝사랑하는 힐라리온의 비중이 강화됐다.

"내가 클래식에 어울리는 몸이 아니에요. 얼굴도 '왕자'가 아니고. 《지젤》 공연할 때도 알브레히트는 못 해보고 힐라리온이나 마을 청년으로 나왔지요. 《호두까기 인형》에서는 드로셀마이어였고. 춤보다 연기력이 강한 배역들입니다. 짝사랑도 참 많았지요…."

1막은 무대 바닥이 하얗고 2막에선 검다. 지젤의 심리를 비추는 흑백의 대비다. 의상도 파격적이다. 2막에서 지젤 등 창녀들은 거의 속옷 차림이다. 창녀촌의 왕언니 역할은 남자 무용수가 한다. 제임스 전은 "바닥을 이용하는 춤, 골반과 무릎을 쓰는 역동적인 춤이 많아 토슈즈도 신지 않는다"고 했다.

"이번 《지젤》은 부서질 것 같은 백색 발레(ballet blanc)가 절대 아니에요. 하지만 군무는 아름답습니다. 무용수들의 라인(선)보다는 움직임을 강조하지요. 춤이 강해도 내적인 에너지, 지젤의 외로움과 통증은 배어나올 겁니다."

사랑을 고백하는 마임(mime·무언극)도 달라졌다. 클래식에서는 두 손을 왼쪽 심장에 대지만, 이번 《지젤》에서는 심장을 움켜쥐었다가 꺼내 건넨다. 안무가 제임스 전은 "영화감독 히치콕처럼 깜짝 출연도 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나는 이 작품의 주방장이에요. 재료는 평범해도 열정만큼은 특별합니다. 유명한 안무가 조지 발란신도 지원이 끊겼을 때 연습복을 입고 공연했고 그것이 뉴욕시티발레단의 상징으로 남았잖아요. 예술은 배불러도, 배고파도 안 돼요. 맛있는 《지젤》이 될 겁니다."

▶8월 28~30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02)3442-26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