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부가 잘 모르고 작품 산다는 비난 이겨냈죠"

  • 손정미 기자

입력 : 2009.07.22 03:04

김창일 아라리오 회장, 세계 200대 컬렉터에 선정

바젤 아트페어가 열리던 지난달 스위스 바젤 바이엘러 미술관은 영국 작가 마크 퀸의 개인전을 열었다. 5년마다 한 번씩 자신의 피를 4L가량 뽑아 두상(頭像)의 틀에 넣어 얼린 '셀프(Self)'라는 작품이 전시됐다. '셀프' 전시작 중 하나에는 "김창일로부터 빌려 왔다"는 안내문이 써 있었다.

마크 퀸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김창일(58·金昌一) 아라리오 회장이 미술전문지 '아트뉴스(ARTnews)' 여름호에 의해 세계 200대 컬렉터의 한 명으로 선정됐다.

김 회장은 1978년부터 천안에서 버스터미널을 시작으로 백화점 등을 운영해 온 사업가 출신의 컬렉터다. 1977년 무렵 서울 인사동을 돌아다니다 청전 이상범의 작품을 구입하면서 컬렉터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인도의 유명 작가 수보드 굽타(왼쪽) 부부와 함께 한 김창일 아라리오 회장. 김 회장 은 아트뉴스에 의해 세계 200대 컬렉터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아라리오 갤러리 제공

그가 세계 미술계에 컬렉터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2004년 무렵.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꼽히는 데미언 허스트와 트레이시 에민 등 영국의 젊은 작가 작품을 집중적으로 사들였고, 몇 년 뒤 이들이 세계 미술계를 풍미하면서 김 회장의 선견력도 인정받았다.

국내에도 유명 작가의 작품을 가진 컬렉터들이 적지 않지만 김 회장이 세계 200대 컬렉터에 이름을 올린 이유는 뭘까. 김 회장은 "앤디 워홀이나 로이 리히텐슈타인처럼 유명 작가의 검증된 작품을 사는 것은 쉽지만 무명작가의 좋은 작품을 한발 앞서 사들이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컬렉터가 됐지만 30년 여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김 회장이 2004년 160만달러에 사들인 데미언 허스트의 작품을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에 전시하자 "졸부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작품을 샀다"는 비난을 들었다. 지금까지 3000점의 작품을 사들이면서 상당수가 '실패작'이라는 비싼 레슨비도 치렀다. 김 회장은 "좋은 작가의 걸작을 얻기 위해선 빨라야 하고 재력도 있어야 한다"며 "좋은 컬렉터가 되기 위해 공부도 많이 해야 하지만 유명 갤러리와의 관계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컬렉터로 머물지 않고 천안에 아라리오 갤러리를 열어 전속 작가를 두고 있다. 또 씨 킴(CI Kim)이라는 이름으로 작가 활동도 하고 있다. 지난 2월에도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그에게 '작품을 하면 컬렉터로서 집중력이 흐려지지 않느냐'고 묻자, 김 회장은 "작업을 해보니 작품의 터치에 대해 더 잘 알게 돼서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