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ABC] 생긴건 록 밴드인데… 리코더 부는 사내들

  • 김성현 기자

입력 : 2009.07.20 02:51 | 수정 : 2009.07.20 06:46

창단30년 음반 낸 '암스테르담 로에키 스타더스트'

생긴 건 영락없이 록 밴드 'U2' 같은데, 실은 리코더 4중주단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음악 교육용으로 배우고 불던 악기로만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네덜란드의 리코더 4중주단 '암스테르담 로에키 스타더스트 콰르텟(Amsterdam Loeki Stardust Quartet)'은 1978년 창단 이래 장장 30년 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언뜻 괴상해 보이는 4중주단의 이름은 결성 초기에 재미 삼아 연주하던 TV 광고 음악에서 따온 것입니다. 암스테르담 음악원 동문인 이들의 30년 결산 음반(채널 클래식스)이 최근 국내에 소개됐습니다.

이 실내악단은 창단 3년 뒤인 1981년 벨기에에서 열린 고(古)음악 경연대회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결선 당시 이들은 스티비 원더의 팝 음악을 1600년 이전의 옛 음악인 양 가짜 제목까지 붙여가며 슬쩍 편곡해서 연주했습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음악만으로는 콘서트를 채울 수가 없기에 이들은 이처럼 현대음악을 연주하고, 편곡을 하면서 레퍼토리를 늘려나갔습니다.

지난해 창단 30년을 맞은‘암스테르담 로에키 스타더스트 4중주단’./채널 클래식스 제공

그런 치열한 생존 노력이 장수의 발판이 된 셈입니다. 이들은 "무수한 걸작을 무엇이든 꺼내서 연주할 수 있는 현악 4중주단과는 출발 조건부터 달랐다"고 합니다. 덕분에 이 리코더 실내악단은 바흐와 퍼셀 같은 르네상스와 바로크 음악부터 쇼스타코비치 같은 현대음악까지, 또 재즈부터 클래식까지 장르와 시대를 거침없이 종횡무진 넘나듭니다.

음반을 들으며 '리코더 음악이 이렇게 다채로웠던가'라며 고개를 갸웃할 즈음, 단원들은 리코더 음색의 비밀을 한 가지 일러줍니다. "리코더는 잘 어울리면 마치 오르간과 같다"는 것입니다. 실제 바흐와 쇼스타코비치의 '푸가'에서 이들의 리코더는 오르간의 여러 건반을 동시에 누른 듯한 환상을 빚어냅니다. 단원인 카렐 얀 스텐호벤은 "리코더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고 영원하다"고 말합니다.

이 악단의 또 다른 단원인 다니엘 브뤼헨은 리코더 명인이자 고음악 지휘자로 이름 높은 프란츠 브뤼헨의 조카입니다. 삼촌 역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리코더로 대신 녹음했던 명인입니다. 음반에 함께 실린 공연 실황에서도 삼촌과 조카가 나란히 앉아 리코더를 협연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네덜란드는 영국·프랑스·독일 등의 강국 사이에 끼어 있는 인구 1600만의 작은 나라입니다. 하지만 지난해 음악 전문지 그라모폰의 설문에서 네덜란드의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가 베를린 필과 빈 필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관현악 강국'이지요. 암스테르담은 사순절 기간이면 바흐의 수난곡이 연일 울려 퍼지는 '하드코어 음악 도시'이기도 합니다. 소위 '비인기 종목'에 속하는 리코더 실내악단을 30년간 유지하는 뚝심을 보면, 이 강소국(强小國)의 음악 저력은 이렇게 다양성을 존중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