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사(백남준을 기리는 사람들) "백남준은 세계에 내놓을 국가브랜드"

  • 손정미 기자

입력 : 2009.07.16 03:02

"평가 제대로 안 이뤄져" 고인의 생일인 20일 용인서 퍼포먼스 무대

장대비가 내리던 지난 14일 오후 5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로비. 공연이 없어 한적한 이날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 '호랑이는 살아 있다' 앞에 낯익은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국악인 황병기씨, 수필가 이경희씨, 조동화 월간 '춤' 발행인, 서양화가 최경한씨, 김용원 도서출판 삶과꿈 대표, 송정숙 전 보건사회부 장관, 건축가 김원씨, 이기웅 열화당 대표…. 우산을 써도 온몸이 젖는 날씨에도 모두들 표정이 밝았다.

이들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2006년 1월 세상을 떠난 후 만든 '백남준을 기리는 사람들(백기사)' 발기인들이다. 모임을 발의한 사람은 백씨의 유치원 친구 이경희씨였다. 해외에서 활동하던 백남준이 30여년 만에 귀국하면서 제일 먼저 찾은 여자친구였던 이씨는 백씨가 타계하자 이경성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찾아가 '백기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천재 예술가의 존재가 빛을 잃게 되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에서였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로비에 있는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 앞에서 자리를 함께한‘백남준을 기리는 사람들’발기인. 각자 백남준과 인연이 있는 소장품을 가지고 나왔다. 뒷줄 왼쪽부터 김원 송정숙 이경희 강태영( ‘백기사’명예회장) 황병기 조동화씨. 앞줄 왼 쪽부터 최경한 이영철(백남준아트센터 관장) 이기웅 김용원씨./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여기에 뜻을 함께한 '백기사' 발기인은 대부분 백씨와 인연이 깊었던 사람들이다. 백남준의 뛰어난 예술론을 '춤' 잡지에 실었던 조씨는 "우리 모두 백남준의 신도(信徒)들"이라고까지 표현했다. 황씨는 1968년 뉴욕 공연을 가면서 경기고 선배인 백남준을 찾아가 첫 대면을 한 후 백씨를 위한 기금 마련 공연을 하는 등 예술적 영감을 나눠왔다. 김원씨는 1988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설치된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 '다다익선'의 디자인을 맡으며 세계적인 거장과 호흡을 같이하는 행운을 얻었다. 황씨는 "세계적인 예술가 백남준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백남준을 세계에 내놓을 국가브랜드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송 전 장관은 "백남준이야말로 국부(國富)의 원천이 될 수 있는데 후대를 위해서라도 그를 알고 있는 우리가 나서야 한다"고 했다.

'백기사'는 백남준의 기일과 생일에 추모 행사를 가져왔고 2007년에는 'TV 부처 백남준'이란 추모문집을 냈다. 현재 '백기사' 회원은 40여명으로 앞으로 회원을 더 늘려갈 계획이다. '백기사'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김원씨는 "백남준 선생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도록 힘을 모을 예정"이라며 "우선 서울 종로구 창신동 생가터를 보존하고, 국내외의 백남준 연구를 후원하는 등 할 일이 너무 많다"고 했다.

'백기사'는 백남준의 생일인 오는 20일 경기도 용인 백남준아트센터에서 퍼포먼스 형식의 무대를 갖는다. 공동 대표를 맡고 있는 황병기씨와 이경희씨가 백남준의 '태(胎)내 자서전'을 읽는 자리다. '태내 자서전'은 백남준이 자신이 태어나기 전 어머니 뱃속에 있던 자신과 어머니가 나누는 대화를 상상해서 쓴 것으로, 황씨와 이씨가 각각 백남준과 어머니 역을 맡는다. 황씨는 "이런 무대는 처음인데…"라면서도 벌써 이씨와 연습까지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