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70년대 원작의 포로가 된 온달과 평강

  • 박돈규 기자

입력 : 2009.07.16 03:06

연극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바보 온달(김수현)도, 평강 공주(서주희)도 쓰러진다. 역모(逆謀)에 의한 죽음이다. 그 순간 피아노 연주가 단조로 흐느끼고 무대에는 눈이 내린다. 온달의 노모(박정자)는 한동안 얼어붙어 있다. 눈발은 짙어지고, 노모는 그 속으로 들어갈 참이다. 현실에 저항하듯 중얼대는 노모의 대사는 느리고 낮게 파고들어왔다. "눈이, 오는군. 오늘은 산에서 자는 날도 아닌데, 왜 이리 늦는고…."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최인훈 작·한태숙 연출)는 눈발로 열려 눈발로 닫혔다. 노모 박정자는 눈발 저편으로 멀어지다가 한번 객석을 돌아봤다. 조명이 꺼지기 직전의 그 짤막한 한 호흡은 뜨거운 정물화, 차가운 시(詩) 같았다. 정치적 억압과 부당한 죽음이 횡행하던 1970년대에 이 작품이 일으켰을 진동이 어렴풋이 전해졌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의 무대는 상징적이다. 왼쪽부터 온달(김수현), 대사(정동한), 평강(서주희)./명동예술극장 제공

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 설화는 크게 세 토막이다. "자꾸 울면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낸다"는 농담에 울음을 뚝 그쳤다는 울보 평강, 궁궐을 뛰쳐나와 온달을 찾아간 그녀의 파격, 고구려의 명장(名將)이 되는 온달의 변신 등이다.

《어디서 무엇이…》는 평강과 온달이 만나고 온달이 장군이 된 이후의 허구에 집중했다. 미래를 암시하는 꿈과 현실이 뒤엉켰고, 연출·무대미술·조명은 심리적인 공간을 만들어갔다. 국악·양악이 섞인 음악, 실로폰처럼 소리가 나는 의상도 어울렸다.

하지만 이 연극은 더 나아가지 못했다. 전체적으로 어정쩡했다. 문학적인 대사가 그대로 있고 현대적인 무대로 포장했지만 어느 쪽도 빛나지 않았다. 2009년의 관객은 1970~80년대의 사회적 맥락에서 벗어나 있기에, 온달과 평강의 비극은 손에 잡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것이 원작의 한계라면 더 현대적인 재해석과 도전정신이 필요했다. 망설임이 너무 많았다.

박정자의 연기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등장할 때부터 그는 달랐다. 노파의 곡선, 말투와 리듬, 시선과 걸음걸이가 관객을 집중시켰다. 40대의 서주희는 세월을 이기기 어려웠다. 그는 연기의 에너지로 평강을 만들어갔지만 관객이 기대하는 평강과는 거리가 있었다.

▶26일까지 명동예술극장. 수요일에는 오후 3시에 공연한다. 1644-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