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정갈하고 경쾌… 소련 시절의 강렬한 소리가 그립네

  • 김성현 기자

입력 : 2009.07.02 05:29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의 '비창'

구(舊)소련 시절, 러시아 교향악단의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연주에는 일종의 필승(必勝) 공식이 존재했다. 한치의 흔들림 없는 강철 금관과 둔탁하면서도 깊은 현악 저음을 강조해서, 한층 강렬하고 묵직하게 고통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레닌그라드 필하모닉(현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을 반세기 동안 '통치'한 지휘자 예브게니 므라빈스키도, 소련 국립 교향악단의 지휘자 예브게니 스베틀라노프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비창'에 비하면, 서구 악단의 연주는 지나치게 유약하거나 기름지게 들렸던 것이 사실이다.

미하일 플레트네프(가운데)가 지휘하는 러시안 내셔널 오케 스트라가 지난 3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차이콥스키 교향곡‘비창’을 연주한 뒤 청중의 박수에 답하고 있다./마스트미디어 제공

1980년대 후반 소련에 개혁·개방 바람이 불면서 '비창'에도 페레스트로이카가 찾아왔다. 명(名)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 미하일 플레트네프(Pletnev)가 창단한 러시아 첫 민간 교향악단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의 '비창'이 그랬다. 한결 정치(精緻)하면서도 정갈한 소릿결로 소련 시절과 사뭇 달라진 '비창'을 두 차례 연달아 녹음했고, 그 변화는 서구의 평단이 먼저 감지하고 환호를 보냈다.

'비창'은 지난 3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이 악단의 내한 무대에서 2부 연주곡이기도 했다. 플레트네프는 마치 퍼즐 맞추기처럼 텍스트를 조각조각 분해한 뒤 기어코 자기식으로 다시 짜맞춰 내는 장난꾸러기 악동 같은 면모를 지니고 있다. 우렁찬 행진곡풍의 3악장에서도 쉽사리 끓어오르기 쉬운 악단을 절정까지 제어하자, 경쾌한 실내악 같은 재미가 살아났다. 4악장의 비탄을 극명하게 대조시키기 위한 정지(整地) 작업이기도 했다.

1악장 도입부터 플레트네프는 느린 템포에서 속도를 더욱 떨어뜨리고 휴지부까지 최대한 활용하며 정적의 순간을 빚어낸 반면, 빨라지는 대목에서는 더욱 가속도를 높이며 명암 대비의 효과를 빚어내고자 했다. 하지만 이틀 내한 공연의 두 번째 무대인 이날 공연에서 플루트와 호른 등 관악에서 일부 피곤함이 묻어나기도 했다. 전체적으로는 저돌적이라기보다는 이지적(理智的)인 '비창'에 가까웠지만, 가끔은 옛 시절의 소리가 그리워질 적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