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친 피아노, 세계인의 마음을 울리다

  • 포트워스=김성현 기자

입력 : 2009.06.09 03:09

일(日) 시각장애 피아니스트 쓰지, 미(美) 국제콩쿠르 공동 우승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일본의 스무 살 피아니스트가 세상을 감동시켰다. 시각 장애 피아니스트 쓰지 노부유키(20)는 8일(한국 시각) 미국 텍사스주의 포트워스에서 폐막한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공동 우승을 차지했다. 1962년 시작돼 올해 13회를 맞은 이 콩쿠르는 4년마다 열리며 미국 최고의 피아노 경연대회로 꼽힌다. 시각 장애 연주자가 이 콩쿠르 본선에 진출한 것은 1973년 주디스 워커(Walker)가 마지막이었지만 그는 당시 2차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6일 결선에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한 쓰지는 지휘자 제임스 콘론의 부축으로 천천히 무대 위로 입장했다. 청중에게 환한 웃음으로 인사한 뒤 자리에 앉았지만 그는 눈앞의 건반을 볼 수도,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에게 눈길을 건넬 수도 없었다. 잠시 독주(獨奏)를 쉬는 동안에도 다음에 소리 낼 음을 찾기 위해 일일이 높은 건반부터 손으로 짚어가야 했다.

하지만 서정적인 2악장이 찾아오자 그는 따뜻한 소리로 자연스럽게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의 선율은 콩쿠르 결선이 열린 바스 홀(Bass Hall)을 가득 메운 2000여 청중뿐 아니라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 전 세계 수십만명의 네티즌에게도 퍼져 나갔다. 연주가 끝났을 때 그는 누구보다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청중은 기립박수를 보냈지만 그는 그 객석을 바라볼 수 없었다.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공동 우승을 차지한 일본의 시각 장애 피아니스트 쓰지 노부유키가 결선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하고 있다./반 클라이번 재단 제공
다음 날 결선 리사이틀에서도 그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열정' 2악장에서 단순하고 소박한 선율로 출발해서 서서히 감동을 전파시켰다. 그는 콩쿠르 홈페이지를 통해 실시된 네티즌 투표에서 결선 진출자 6명 가운데 2위에 오를 정도로 강한 지지를 받았다.

쓰지는 4세 때 어머니가 건네준 쇼팽의 폴로네즈 음반을 듣고 장난감 피아노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하루 4~8시간씩 연습을 거르지 않았으며 7세 때 일본 시각 장애 학생 콩쿠르에서 입상했고, 12세에는 도쿄 산토리홀에서 독주회를 가졌다. 2007년 일본의 에이벡스(AVEX)음반사에서 두 장의 음반을 발표했으며, 음반사의 권유로 이번 콩쿠르에 출전했다. 이번 대회 연주자 소개에 "음악 앞에는 어떤 장벽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믿음"이라고 썼던 쓰지는 인터뷰에서 "피아노를 통해 사람들에게 기쁨을 선사하는 것이 즐거웠을 뿐 결선에 오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번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는 중국의 19세 피아니스트 장 하오첸이 쓰지와 함께 공동 우승을 차지했으며, 한국의 손열음(23)이 2위와 최고 실내악 연주상을 수상하는 등 '아시아 돌풍'이 거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