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선 Live] 마에스트로 정명훈

  • 강인선 기자

입력 : 2009.06.05 02:39

"지휘 기술 자체는 창피할 정도로 쉽지만 경지에 도달하는 건 30년 됐지만 어려워"

"연주자와 지휘자는 피자 배달하는 사람들과 비슷해요. 피자는 뜨거운 상태로 배달해줘야 하잖아요. 우리 책임은 음악을 뜨겁게 살리는 겁니다."

'마에스트로' 정명훈(56)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은 음악을 음식에 자주 비유했다. 미국에서 한식당을 운영했던 부모를 돕느라 여덟살 때부터 부엌에서 일을 했던 정 감독은 요즘도 부엌에 있을 때 마음이 가장 편하다고 한다. 정 감독은 자신의 생일과 크리스마스 등에 부인 구순열씨가 요리하는 며칠을 제외하면 1년 내내 부엌에서 요리를 책임진다. 부엌에서 음식 만드는 일을 사나흘 하지 않고 있으면 우울해질 정도로, 요리는 그의 삶을 떠받치는 또 하나의 축이다.

디지틀조선일보의 케이블 채널인 '비즈니스 앤(Business&)'의 '강인선라이브'에 출연한 정 감독은 "지휘의 기술 자체는 창피할 정도로 쉽지만 지휘자로서 어떤 경지에 도달하는 건 30년을 했는데도 여전히 어렵다"고 했다. 그는 "배우는 게 남보다 늦는 체질이라 아침에 일어나서도, 차에서도, 앞으로 연주할 곡에 대해 공부하고 또 공부한다"고 했다. 그래서 "머릿속에서 늘 음악이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마에스트로 정명훈은“너무 심각한 성격이라 스스로에게 인색한 평가를 하기도 하지 만 사실은 더 이상 원하는 게 없을 정도로 행복하다”고 했다. 마에스트로는 그 비결이 무엇인지를 6일 밤‘강인선라이브’에서 들려준다./비즈니스앤 제공
정 감독은 피아니스트에서 지휘자로 변신하면서 더 행복해졌다. 그는 "피아니스트였을 땐 연주 한번 하고 나면 잘못한 부분만 생각나 늘 울었다"고 했다. 항상 피아노와 싸우는 기분으로 살았다. 지휘자가 된 후엔 더 이상 붙들고 늘어질 피아노 같은 대상이 없으니 편하고 자유로워졌다.

정 감독은 "잘못한 기억은 억지로라도 잊어버리는 버릇을 들인 것도 도움이 됐다"고 했다. 그런 훈련을 거듭하다 보니 아예 좋은 면만 보는 습관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는 아내 구씨와 세 아들 이야기만 하면 표정이 밝아지고 목소리에도 힘이 생긴다. 정 감독은 "음악과 가족 등 평생 누려온 걸 생각해보며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로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고 했다.

요즘 그의 화두는 '타인'이다. "스스로 음악을 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감동이나 도움을 줄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것이다. 음악적으로 더 이루고 싶은 건 없을 정도로 많은 기회를 누렸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에 남은 숙제를 하기로 했다는 뜻이었다.

'숙제'를 내준 사람은 교황 존 바오로 2세였다. 약 20년 전 로마에 갔다가 만난 교황은 농담도 하고 재미있게 말도 잘했다. 교황은 헤어지기 직전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한 가지만 잊어버리지 마라.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게 큰 책임이다"라고 속삭였다. 그 당부가 마음에 깊이 스며들어 늘 책임감을 느끼게 했다.

'강인선라이브' 정명훈 편은 5일 오후 9시50분 '비즈니스앤'에서 방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