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원폭(原爆)처럼 폭발하는 '흥미진진 입씨름'

  • 박돈규 기자

입력 : 2009.06.04 03:25

연극 '코펜하겐'

무대는 1941년 9월 독일이 점령 중인 덴마크코펜하겐. 노벨상을 받은 세계적인 원자물리학자 닐스 보어(남명렬)의 집 초인종이 울린다. 독일의 핵분열 프로그램을 이끌던 베르너 하이젠베르그(이상직)가 스승이자 동료였던 보어를 찾아온 것이다.

연극 《코펜하겐》(연출 윤우영)은 바로 이 순간을 포착해 질문을 던진다. 보어의 아내 마그리트(김호정)의 입을 통해 나오는 첫 대사 "그런데, 무엇 때문이었을까요?"다.

이 연극은 베토벤 소나타 G단조로 열린다. 음악과 물리학은 갈등하지 않고 어울렸다. 그러나 신문뭉치 위에 거대한 역삼각형을 놓은 무대는 불안감을 강조하고 있었다. 이 역삼각형은 이 드라마 속 등장인물 3명의 역학 구도를 보여주는 한편 핵분열을 설명하는 칠판, 물결이 일렁이는 스크린으로도 쓰였다. 상징과 실용의 결합이다.

《코펜하겐》은 원자물리학을 소재로 한 연극이다. 왼쪽부터 이상직 김호정 남명렬./두산아트센터 제공
불확정성의 원리, 양자역학, 상보성, 입자가속기 같은 전문용어들이 등장하지만 감상을 훼방하지는 않았다. 과학이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을 비추기 때문이다. 천연우라늄은 우라늄235와 우라늄238의 두 가지 동위원소를 가진 우라늄의 혼합물이라는 점, 우라늄235만이 고속중성자를 쐈을 때 핵분열을 일으킨다는 점 등 핵분열을 설명하는 대목은 흥미진진하다. 의자와 조명을 이용한 공간 분할, 원자핵·원자·전자 같은 세 배우의 움직임도 연극적이었다.

이 연극은 《노이즈 오프》로 알려진 영국 작가 마이클 프레인의 작품이다. 하이젠베르그와 보어의 논쟁은 여러 번 조금씩 다르게 변주된다. 이상직의 연기와 눈빛, 남명렬의 부드러운 화술, 김호정의 균형감각이 관객을 집중시켰다. 연합군이 독일의 머리 위로 핵폭탄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하이젠베르그의 강박, "속도조절이 필요해. 빠르지만 어디쯤 와 있는지 자네는 늘 몰라" 같은 보어의 대사 등이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연쇄폭발했다. 역설과 모순, 그것의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코펜하겐》은 삶의 불확실성에 대한 이야기다. 이 연극은 처음 던진 질문에 답하려고 하지 않는다. 등장인물들은 "어디엔가 손을 대기도 전에 우리 생은 끝나버리고, 우리가 누구인지 알아보기도 전에 우리는 먼지로 흩어진다. 우리가 일으켜놓았던 그 먼지 속으로"라고 말한다. 마지막 순간, 다시 음악이 들어오고 조명이 한껏 환해졌다가 꺼진다.

▶7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02)708-5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