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5.26 03:03

일본의 '벳푸(別府) 아르헤리치 페스티벌'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명(名)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Argerich)의 이름을 딴, 명문 실내악 축제다. 지난 1998년 시작돼 올해 11회를 맞은 이 음악제는 온천 명소라는 지리적 이점에 실내악을 결합하면서, 매년 5월 시즌마다 1만여명이 몰려든다. 이 페스티벌의 안방살림을 책임지는 총괄 프로듀서 겸 부(副)이사장인 피아니스트 이토 교코(伊藤京子·56)가 지난 24일 벳푸 아르헤리치 페스티벌의 서울 공연을 맞아 내한했다.
"음악제에 투자가 몰리거나, 덩치가 크다고 마냥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에요. 지금 규모를 유지하면서도 앞으로 100년을 내다보고 지속할 방안을 찾고 있어요." 치밀하고 꼼꼼한 일 처리로 정평이 있는 일본 특유의 어법으로, 교코는 "규모는 작아도 계속할 수 있는 공연을 하면서 축제가 탄탄하게 뿌리를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축제의 한 해 예산은 1억2000만엔(15억8000여만원)가량이며, 벳푸가 속해 있는 오이타현(縣)에서 5000만엔(6억6000여만원)을 지원받는다.
교코는 "처음 8년은 음악제가 왜 필요한지 공무원들을 설득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뒤부터 온천 지대의 특성을 살려 '음악이 샘솟는 곳'이라는 의미의 '음천(音泉)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피아노를 아무리 열심히 연습해도 배는 부르지 않다. 왜 예술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지 공감대를 찾도록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코는 1977년 독일 유학 중에 아르헤리치를 처음 만났다. 그는 "피아니스트들에게 아르헤리치는 신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악수라도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첫날엔 식사를 함께했고, 이튿날엔 내 연주회에 아이들을 데리고 왔으며, 사흘째는 손수 연습실을 구해줘 함께 연습하면서 친구가 됐다"며 웃었다.
음악제에서 어린이를 위한 음악회를 강조하고 있는 교코는 "음악가로 자라나지 않더라도 아이들의 상상력과 집중력을 자극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바로 예술"이라고 했다.

◆ 폴란드 펜데레츠키 여사 "음악은 언제나 하나"
엘쥐비에타 펜데레츠키(Penderecki·62)는 폴란드의 대표 작곡가 크쉬스토프 펜데레츠키(76)의 부인으로 더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자신 지난 1997년부터 폴란드 크라코프에서 열리는 '베토벤 부활절 페스티벌'의 대표이자 총감독을 맡고 있는 폴란드 예술계의 실력자이기도 하다. 30일까지 열리는 제1회 서울 국제음악제에 참석하기 위해 남편과 함께 내한한 펜데레츠키 여사가 25일 기자 간담회에서 음악제의 운영 철학을 털어놓았다.
"대형 오케스트라나 유명 연주자들은 현대음악을 연주하는 걸 꺼리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고전음악이 따로 있고 현대음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음악은 하나입니다. 우리는 21세기에 살고 있으며 오늘날의 음악을 후원할 의무가 있어요."
그는 "상반되는 것들을 하나로 묶어서 사고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를테면 고전음악만 연주하거나, 현대음악만 특화하는 것이 아니라 축제에서 둘을 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펜데레츠키 여사는 "온라인은 언제나 효율적이고 빠른 방법이지만, 거기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그와 반대로 여행사를 직접 찾아가 설득하면서 음악제를 여행 상품과 결합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베토벤 타계 170주기를 맞아 베토벤 부활절 페스티벌을 시작할 때에도 우려가 적지 않았다. "동구권에서 부활절은 가족이 모여 함께 식사를 하면서 경건하게 보내는 기간이에요. 이 때문에 음악제에 대해 걱정 어린 시선도 많았지요. 처음엔 6일 일정으로 시작했지만 음악제와 여행을 결합하는 발상 등으로 조금씩 규모가 커졌어요."
그는 "프로그램과 연주자를 상세하게 안내하는 두꺼운 책자를 예쁜 디자인으로 꾸미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꾸로 축제 정보를 1~2쪽으로 간결하게 요약한 소책자를 활용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영민한 음악행정가이자 사업가인 펜데레츠키 여사는 이날 간담회에서도 남편의 작품을 연주하는 이번 축제에서 주최와 후원을 맡은 한국국제교류재단과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등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며 감사 표시를 빼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