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발레계 김연아' 박세은

  • 서일호 기자

입력 : 2009.05.19 17:18 | 수정 : 2009.05.20 19:56

세계무대? 천천히 가죠 뭐! 제일 하고 싶은 것? 미팅!
네덜란드 대신 한국 선택한 이유? 어릴 적 우상들과 한 무대 서고 싶어
김지영 보며 발레 꿈 키워 내년엔 시니어 국제콩쿠르 도전
<이 기사는 주간조선 2056호에 게재되었습니다.>

‘발레계의 김연아’로 불리는 박세은(20)이 5월 초 국립발레단(단장 최태지)에 입단했다. 그녀는 2006년 미국 ‘잭슨 국제발레콩쿠르’에서 금상 없는 은상을 차지했고, 2007년 스위스 ‘로잔 국제발레콩쿠르’에서 1위를 했다. “로잔 콩쿠르 때 무척 아팠는데 극복했어요. 2010년 불가리아 바르나콩쿠르에도 나가고 싶어요. 잭슨 콩쿠르와 겹쳤거든요. 이제 주니어 꼬리표를 떼고 시니어로 세계 대회에 나갈 겁니다.”


박세은은 지난 2년간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American Ballet Theater) 주니어팀(만 16~20세)에서 활동했다. 이곳의 케빈 맥켄지 감독은 박세은을 가리켜 “너무나 특별한 댄서이고 춤이 굉장히 신선하며 어둠 속 빛 같은 존재”라고 했다. “국제발레콩쿠르에서 입상을 해서 가게 되었어요. 원래 1년이었는데 그쪽에서 연장을 원했어요. 니나 아나니아 시빌리, 팔로마 헤레라 등과 같은 세계적 스타들과 한 공간에서 연습을 한 것이 좋은 경험이었어요. 발레단도 마음에 들었지만 뉴욕 생활 자체가 너무 즐거웠어요. 그래서 행복한 기억밖에 없죠.”

그녀는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주니어팀의 일원으로 2년간 미국 투어도 많이 다녔다. “알래스카, 애리조나, 라스베이거스 등 30개가 넘는 도시를 다녔어요. 웬만한 미국 도시는 다 가본 것 같아요. 그곳에서 미국 사회와 문화를 배우면서 무대경험을 쌓았죠.”


박세은은 미국 도시 중 라스베이거스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인공위성에서 보면 가장 빛난다고 할 정도로 밤이 환해요. 라스베이거스에서는 호텔 돌아다니면서 구경하는 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나이가 어려 카지노에 못 들어간 것은 아쉬워요.”


뉴욕에서는 문화적인 자양분을 많이 흡수했다고 한다. “‘라이온 킹’ ‘오페라의 유령’ 등 뮤지컬을 많이 봤어요. 또 외국인 친구들과 잘 어울렸어요. 그 친구들이 갈비, 김밥, 떡볶이 등 한국음식을 좋아해서 한인타운에도 자주 갔죠.”


처음에는 의사소통이 어려웠지만 룸메이트를 잘 만나 금방 영어에 익숙해졌다고 했다. “처음 1년은 보디랭귀지를 사용하면서 어떻게든 적응하려고 노력했죠. 발레단에 한국 친구가 없어서 외국 친구들과 다녀야 했어요. 룸메이트가 제가 영어로 이야기하다 틀리면 고쳐주고 사전까지 찾아 알려주는 좋은 선생님 같은 친구였어요. 그래서 룸메이트가 가장 그리워요.”

사실 박세은은 한국에 오기 전 네덜란드국립발레단 오디션에서 140명 중 1등을 해 입단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다. “네덜란드국립발레단은 극장도 따로 있고 감독도 좋아 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최태지 단장님의 권유로 한국에 오게 됐죠. 최 단장님과는 국립발레단 문화학교에서 처음 만났어요. 당시 제게 ‘조급해 하지 말고 천천히 가라’고 조언해준 스승이었죠. 제 우상인 김지영 언니와 한 무대에 설 수 있는 것도 꿈만 같아요. 또 김주원 언니에게 섬세한 감정표현을 배울 수 있게 돼서 좋아요.”


다만 아쉬운 점은 토슈즈를 비롯한 물품지원이라고 한다. “원래 두 달에 한 켤레였는데, 6개월에 11켤레로 많이 나아진 거라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미국에서는 원하는 슈즈를 마음껏 쓸 수 있었어요.”


그녀는 5월 28일 ‘돈키호테’ 공연을 시작으로 7월 ‘지젤’, 11월 ‘왕자 호동’에 출연할 예정이다. “아침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계속 연습을 하고 있어요. 미국에서보다 훈련 강도가 센 편이에요. 예전에는 세 끼를 모두 먹었는데 이제는 점심을 먹을 시간이 없어요. 아침에 시리얼을 먹고 오후 7시쯤 저녁을 먹어요. 언니들이 연습을 하면 저절로 다이어트가 된다고 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이제 이해가 가요.”

박세은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발레를 시작했다.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을 보고 발레의 매력에 빠졌고 김지영 언니의 예쁜 모습을 보고 발레리나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예원학교, 서울예고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 1학년을 다니다가 휴학을 한 상태이다. “당분간 학교생활은 접고 발레단 활동에만 전념할 생각이에요. 미팅을 아직 못해본 게 가장 아쉬워요.” 그녀는 발레가 주는 매력이 ‘완성이라는 중독성’이라고 했다. “아프고 힘들게 연습해 얻어낸 성과가 달콤하고 행복해요. 제가 관객에게 무언가 보여줬다는 걸 느낄 때 가장 행복해요.”


‘발레계의 김연아’라고 불리는 박세은에게 김연아에 대해 묻자 정말 대단한 후배인 것 같다는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최근에 친구랑 피겨스케이트를 타봤는데 허리가 너무 아팠어요. 김연아처럼 멋지게 발을 들어보려고 했는데 스케이트가 무거워서 잘 안 되더라고요. 점프는 엄두도 못 냈어요. 또 넘어지면 바닥은 차갑죠. 이런 환경에서 연습을 해서 관객들에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김연아가 정말 대단한 후배인 것 같아요.”


그녀는 2녀 중 막내. 키는 168㎝이지만 마른 체형이라 더 커보인다. 어머니가 피아노 선생님이라 음악에 대한 감각이 길러졌다고 한다. “클래식 발레는 음악이나 동작에 절제미가 있는 것 같아요. 다 표현하지 않아도 충분한 아름다움을 내뿜죠. 모던 발레는 제 모든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 방식으로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에요.”


박세은은 30대 후반까지는 발레를 하고 있을 것 같다고 한다. “그러니 강수진 선생님이 얼마나 대단한 분이세요. 저도 세계무대에 나가고 싶어요. 국립발레단에서 활동하다가 기회를 봐야죠. 성격상 한 곳에 오래 있지는 못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