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藥)이냐 독(毒)이냐" 더블캐스팅(한 배역에 두 배우가 교대로 출연)의 두 얼굴

  • 박돈규 기자

입력 : 2009.05.21 03:15

스타 내세워 홍보 노려 공연계 공식처럼 유행…
가창력 등 작품성 떨어져 "흥행도움 안된다" 분석도

"저는 엄기준·신성우·배해선·손광업, 이렇게 보고 왔는데요. 엄기준·유준상·백민정·이정열, 이렇게도 보고 싶더라고요. ㅋㅋ"(kosmos0527)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김승우님, 여기선 빛을 발하시기보다 빛을 죽이시는 듯. 오만석님의 스케줄 추천."(hees78)

20일 인터파크 예매 랭킹 1위를 다툰 뮤지컬 《삼총사》(6월 21일까지 충무아트홀) 《드림걸즈》(7월 26일까지 샤롯데씨어터)의 관람 후기들이다. 《삼총사》는 엄기준·박건형이 달타냥, 신성우·유준상이 아토스, 이정열·손광업이 추기경, 배해선·백민정이 밀라디 역을 나눠 맡고 있다. 《드림걸즈》는 영화배우 김승우의 뮤지컬 데뷔로 화제를 모았지만 개막한 뒤 그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좋지 않다. '같은 배역(커티스)의 다른 배우(오만석) 출연일을 택하라'는 조언도 있다.

누구의《삼총사》를 봐야 할까? 뮤지컬《삼총사》에서 달타냥을 나눠 맡는 엄기준(왼 쪽)과 박건형.‘ 엄타냥’‘박타냥’이라 불린다./엠뮤지컬컴퍼니 제공

《형제는 용감했다》의 이석준·정준하, 《빨래》의 임창정·홍광호 등 더블 캐스팅은 한국 뮤지컬의 중요한 '공식'처럼 굳어지고 있다. 《시카고》 《지킬 앤 하이드》는 트리플 캐스팅도 했고, 《햄릿》 《헤드윅》은 주인공을 넷 뽑아 '4인 4색 골라 보자'는 홍보카피로 눈길을 끌었다.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영국·미국에서는 원(one) 캐스트가 불문율인데, 국내에서는 스타 연예인을 뽑아 홍보하는 장치로 더블·트리플 캐스트를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시카고》의‘벨마 켈리’인순이(왼쪽)와 최정원./신시컴퍼니 제공
실제로 '○○○ 뮤지컬 데뷔' 같은 뉴스는 개막 전 공연의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 현재도 엄지원이 《기쁜 우리 젊은 날》로, 공형진은 《클레오파트라》로 뮤지컬 무대를 처음 밟고 있다. 연예인의 뮤지컬 도전은 방송국 예능 프로그램 출연, VIP 시연회 등으로 이어지며 매력적인 홍보 구조를 만들고 있다.

문제는 공연의 품질이다. 두세 명이 한 배역을 나눠 맡을 경우 집중력과 연습량, 다른 배우들과의 호흡은 반감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옥주현바다(최성희)가 성공 사례로 남았지만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노주현, 《제너두》의 강인은 작품 전체에 영향을 줄 정도로 혹평을 받았다. 노래를 부를 때마다 관객은 조마조마했다. 《렌트》의 조민아, 《캣츠》의 대성도 가창력이나 연기력에서 결함을 노출했다. 5년 만에 새 음반을 내고 《시카고》에 벨마 켈리로도 출연하는 인순이는 "(상대역인) 록시 하트가 셋인데 (나는 바쁘니) 그들이 나에게 맞춰줘야 한다"고 했다.

《드림걸즈》의‘커티스’오만석(왼쪽)과 김승우./오디뮤지컬컴퍼니 제공
한국의 더블 캐스팅 붐은 '뮤지컬 전문 배우 한 명으론 불안하다'는 제작자의 고백과도 같다. 대극장 장기공연의 경우 더블 캐스트 중 한 명을 스타 연예인으로 뽑으면 대중친화적인 이미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유리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는 "영화·음반 시장이 오그라들어서인지 최근엔 연예인들이 먼저 뮤지컬의 문을 두드린다"며 "뮤지컬로 진출하는 스타 연예인들이 많아지면 홍보 효과가 줄고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개막 전 인지도 상승과 실제 티켓 구매는 별개라는 분석도 있다. 클립서비스 신정아 과장은 "일단 개막해 뚜껑이 열리면 중요한 것은 실력"이라면서 "스타 출연은 공연을 알리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곧장 세일즈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관객 입장에서는 특정 배우를 보러 갈 것인지, 작품을 감상할 것인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조용신 공연칼럼니스트는 "배우에 따라 출렁일 수 있는 공연의 품질을 관리해야 관객의 신뢰를 얻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