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III] [라이프 인 경기] 견딜 수 없는 내 안의 '끼' 분출

  • 이재준 기자

입력 : 2009.05.20 03:17

분당 주부들의 '로망스클래식 기타합주단'
성남 곳곳서 매년 20차례 연주 남편·자녀들과의 사랑 더 커져

19일 오후 3시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여성문화회관 연습실에서 "띤~따따단" 하는 소리와 함께 기타 연주가 시작됐다. 기타리스트 박종대(50)씨의 지휘봉에 따라 25명의 주부들은 하나가 됐다. 청바지에 흰색 셔츠를 가볍게 입은 주부들이 연주하는 곡은 '엘콘도르파사'였다. '철새는 날아가고'라는 뜻의 곡에선 슬프면서 애절한 느낌이 배어 있었다. 이들은 분당구 주부들을 중심으로 이뤄진 '로망스클래식기타합주단'의 멤버들. 매주 화요일 3시부터 5시30분까지 여성문화회관에서 모여 기타 연습을 한다. 이들은 작년 성남 곳곳에서 20여회 연주회를 가질 만큼 음악에 대한 '끼'를 인정받고 있다.

성남 곳곳에 클래식기타 향기

'로망스클래식기타합주단'은 2005년 5월에 시작됐다. 올해 3월부터 단장을 맡고 있는 신양재(54)씨는 "성남 여성문화회관 클래식기타연주반에서 기타를 배운 주부들이 '배운 것을 공연해 보자'라는 생각에 합주단을 만들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지휘는 이 기타연주반을 지도하고 있던 박종대씨가 맡기로 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합주단은 성남시 곳곳에서 매년 20여차례의 공연을 하고 있다. 작년엔 4월 아마데이만돌린챔버자선음악회초청연주, 6월 야탑동 길거리축제초청연주, 10월 구미도서관 실내 연주회 등 16회의 빡빡한 공연 일정을 소화했다. 박해숙(이매동·47)씨는 "공연을 위해선 2주일 동안 이틀에 한번꼴로 2시간30분씩 모여서 연습해야 한다"라며 "한두 사람 빠지는 경우가 간혹 있긴 하지만 단원들은 거의 빼먹지 않고 참석할 정도로 애정이 대단하다"라고 말했다.

성남에서 훌륭한 연주회를 선사하는 이들의 실력은 수준급이다. 악장 박미경(49)씨는 네 손가락으로 기타 6줄을 빠르게 쳐야 하는 '트레몰로'라는 고난도 주법까지 소화한다. 박씨는 이 주법을 타레가의 '알함브라궁전', 모차니의 '라리아네의 축제' 등을 연주한다. 이 곡들은 네 손가락을 순차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동시에 소리는 하나의 화음이 나와야 해 연주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19일 오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여성문화회관 연습실에서 합주 도중 짬을 내 기념촬영을 한‘로망스클래식기타합주단’단원들 모습./이재준 기자

공연마다 추억 하나씩

단원들은 공연마다 소중한 추억 하나씩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연희(수내동·54)씨는 지난 공연 중에 2006년 8월 노인복지시설인 성남 분당구 '정성노인의 집'에서의 공연을 잊지 못한다. 합주단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소양강처녀', '도라지타령' 등 익숙한 연주를 선보였다. 이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합주단원들과 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즐거워했다. 이씨는 이 모습을 떠올리며 "그냥 마주치면 어색했을 사람들이 음악으로 하나가 될 수 있었다"라며 "음악으로 사람 사이에 흐르는 따뜻한 정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이정미(야탑동·53)씨는 2007년 10월 26일 공연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지역난방공사 대강당에서 제1회 로망스클래식기타합주단 창단연주회가 있었던 날이다. 이씨의 남편 조건택(56)씨는 금요일 저녁 술자리 대신 아내의 첫 연주회를 찾았다. 두 딸 조연정(28) 조은정(25)씨는 이씨를 위한 장미 꽃다발을 준비했다. 이씨는 "떨리는 연주 내내 남편 조씨가 연주 모습을 캠코더로 찍는 모습에 새삼 남편에 대한 고마움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기타를 시작하기까지

이들 주부들이 기타를 하게 된 데엔 유년시절 기타에 얽힌 아련한 추억이 있었다. 박옥례(이매동·43)씨는 서울 서문여중을 다닐 무렵 고등학생 오빠들이 통기타를 치며 옥상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지나다가 보게 됐다. 박씨는 그 모습에 마음이 두근거렸다. 박씨는 어머니를 졸라 기타가게에서 한달에 3만원을 내고 한 고등학생에게 기타를 배웠다. 하지만 2~3달 배우다 어머니의 만류로 기타를 그만뒀다. 이후 20여년이 지난 2002년 2월부터 박씨는 성남 여성문화회관 기타반에서 기타를 다시 배웠다. 박씨는 이곳에서 배운 기타솜씨로 2005년 7월 본격적인 합주단 활동을 하게 됐다.

신효순(정자동·47)씨는 의정부여중 2학년 때 장흥으로 떠난 봄소풍에서 본 친구의 기타 연주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신씨는 "평소 명랑하고 성격 좋은 이경희라는 친구가 잔디밭에서 기타를 치면서 부르는 노래에 푹 빠졌다"라며 "언젠가는 기타를 치며 멋지게 노래를 부르는 상상을 하곤 했다"라고 말했다. 신씨는 결국 30년 남짓한 세월이 지나서야 기타를 품에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