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여성적 화법의 배우 이남희가 폭풍같은 남성역(役)을?

  • 박돈규 기자

입력 : 2009.05.18 03:15

연극 '오셀로'

이남희는 연극성이 강한 배우다. 허우대가 좋아 돋보이는 양감(量感)을 지녔지만, 흉내 내기 어려운 그의 화법은 부드러우면서도 능청스럽다. 남성성(몸)과 여성성(언어)이 길항하는 것이다. 이남희는 그래서 《남자충동》에서처럼 '거세당한 남성'을 연기할 때 빛나곤 했다. 그런 그가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연출 심재찬)에서 오셀로 장군 역을 맡았다는 소식은 뜻밖이었다.

오셀로가 누구인가. 베니스의 용맹한 장군으로 검둥이 무어인(아랍계 이슬람교도)이다. 전쟁터에서 차돌같이 단단해진 남성의 이미지. 직선·다혈질·힘·둔중함·고집불통 같은 단어들과 어울린다. 백인 귀족의 딸 데스데모나(이소영)와의 결합은 그래서 파국을 예고한다. 데스데모나의 아버지(이영석)마저 "아비를 속인 년이 남편인들 못 속일까"라고 저주한 결혼이다.

고양문화재단과 대전문화예술의전당이 제작한 《오셀로》는 기다란 직사각의 액자 틀 구조물들을 늘어뜨려 놓았을 뿐, 무대가 비어 있었다. 상징적 공간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 것이다. 오셀로와 승진 인사에 불만을 품고 비극의 시한폭탄을 매설하는 이아고(김수현) 등 배우들은 그 액자 틀 뒤에 숨거나 때로는 관통하면서 연기를 했다. 감추면서도 돌출시키는 겹겹의 기하학이었다.

부하 이아고(오른쪽)의 흉계에 빠져 아내 데스데모나의 불륜을 의심하고 휘청거리는 오셀로./고양문화재단 제공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질투와 의심이다. 이아고는 데스데모나의 불륜과 관련된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리며 오셀로를 흔든다. 아내의 정조(貞操)에 목숨을 걸겠노라 장담했던 오셀로는 믿음을 잃고 무너져간다. 이아고를 뺀 모든 인물에게 명예는 생명보다 소중하다. 이 연극은 연출의 계산과 배우들의 앙상블로 그 추락의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주며 관객을 집중시켰다.

1막에서 동요하며 조금씩 부서지는 이남희의 연기는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2막에서 "난 괴물이다. 바람피우는 아내를 둔 남자는 괴물이다…"라고 한 뒤부터 그는 불편해 보였다. 첫날밤에 사용했던 홑이불을 다시 깐 침대에서 데스데모나를 죽이는 이 연극의 클라이맥스에서는 파워가 약했다. 폭발하는 남성성이 여성적인 움직임·화법과 충돌했기 때문이다. 안정적이었던 이아고와 데스데모나도 이 대목에서는 정리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 《오셀로》는 원작을 충실히 따라가면서 심리적인 공간을 그려내 전체적으로는 성공작이었다. 마음속 폭풍우 같은 풍경을 찍어낸 연출과 무대의 조화가 아름다웠다. 배우에게 고정된 이미지는 독(毒)이라는 점에서 이남희의 이번 도전은 격려받을 만하다.

▶24일까지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 1577-77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