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 명인을 찾아서] [2] 직업란엔 '대한민국 나팔수' 아내와 딸까지 트럼펫 가족

  • 김성현 기자

입력 : 2009.05.14 03:31

KBS 교향악단 트럼펫 수석 안희찬 연주회 끝나면
음악 사이트에 '트럼펫 누구냐'질문 쏟아져
"잘 들리기보다 잘 어울려야"

8년째 기르고 있는 콧수염은 안희찬씨의 트레이드 마크다. 한때“트럼펫 연주법을 공 개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소문까지 돌았지만, 그는“윗입술과 코 사이가 넓은 편이라 기르는 것이 멋있어 보인다”며 웃었다./금호아트홀 구본숙 사진작가
KBS 교향악단의 트럼펫 수석 안희찬(44)씨는 대학 시절부터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어깨를 맞대고 활동했다. 해군 군악대에서 제대하고 영남대 음대 3학년으로 복학한 1989년, 코리안 심포니를 창단한 지휘자 고(故) 홍연택 선생이 그를 트럼펫 주자로 발탁했다. "지금은 금관 연주자의 저변이 엷어서 외국 음악인을 객원 단원으로 기용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수석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대비하라"는 '지령'과 함께 홍 선생의 후원으로 네덜란드 로테르담 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안씨는 "그 말씀이 부담으로 남아 맘껏 놀 수도 없었다"고 회고했다.

안씨가 귀국했던 1991년 6월, 코리안 심포니는 '귀국 환영회'처럼 말러 교향곡 5번을 연주했다. 트럼펫이 사실상 1악장 내내 끌고 가는 이 교향곡의 특성 때문에 "서울 시내의 관악 연주자들이 모두 몰려들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연주회에서 마치 오디션을 받는 듯했죠. 하루 종일 긴장이 멈추질 않아 신경안정제를 먹어야 할 정도였어요." 하지만 이 연주회 직후 안씨는 트럼펫 수석으로 발령받았다.

국내 오케스트라에서도 금관은 언제나 취약점으로 지적되지만, 안씨는 유일하고 강력한 대안으로 꼽힌다. 말러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쇼스타코비치 등 금관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오케스트라 연주회가 끝나면 인터넷 음악 사이트에 트럼펫 연주를 극찬하거나 연주자가 누군지 묻는 의견이 쏟아진다. 하지만 그는 "연주에서 '잘 들렸다'는 말보다는 '잘 어울렸다'는 칭찬을 듣고 싶다"고 했다.

"트럼펫의 매력은 곧바로 부담이기도 해요. 늘 크게 들리지만, 그렇기에 실수하면 곧장 두드러지는 거죠. 현악기가 10번 잘못한 것보다 더 크게 남을 거예요." 그는 "'잘 들렸다'는 말은 거꾸로 앙상블이 안 좋았다는 뜻일 수 있어요. 오케스트라의 다른 악기들과 깨끗하게 잘 어울리는 것이 트럼펫의 지상 과제"라고 했다.

안희찬씨는 '친구 따라' 금관 악기에 입문했다. 고교 1학년 때 학교 밴드부에서 색소폰을 부는 반 짝꿍의 권유로 무심결에 따라갔다. 첫 악기는 호른이었지만, "악보가 시커멓게 보일 정도로 음표가 수두룩한" 트럼펫에 이끌려 곧 '전향'했다. 고교 3학년 때 영남대에서 열린 전국 학생 콩쿠르에서 1위 입상했고, 4년 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입학했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도 군 복무 시절 같은 악기를 불었던 '트럼펫 가족'이라는 사실은 직업 연주자가 된 이후에 알았다. 지금은 실내악을 연주하며 만난 아내 임시원(40)씨와 큰딸 석영(15)양, 재즈 트럼펫을 공부하는 조카 성한나(23)씨까지 모두 트럼펫을 연주하면서 그 맥을 잇는다. 그는 독집 음반 발표는 물론, 코리아 브라스 콰이어의 리더로 활동하면서 독주(獨奏)와 실내악까지 넘나든다.

안씨는 인터넷 홈페이지의 직업란에도 '대한민국 나팔수'라고 쓸 정도로 당당한 자부심을 보였다. 그는 "베를린 필 같은 정상급 악단에서 간혹 금관의 실수가 나오면 '인간적'이라고 하면서도, 막상 우리가 실수하면 '그럼 그렇지'라고 말한다. 그동안 쌓여온 금관에 대한 고정관념을 이제는 흔들고 싶다"고 말했다.

▶안희찬 트럼펫 독주회, 6월 11일 오후 8시 서울 금호아트홀, (02)6303-7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