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베이스, 육중한 몸으로 비상(飛上)을 꿈꾸다

  • 김성현 기자

입력 : 2009.05.14 03:30

사제(師弟)관계 이호교·성민제 나란히 연주 음반 펴내

사제(師弟)가 힘을 모아 가장 덩치 크고 무거운 현악기를 화려하게 비상(飛上)시켰다. 평균 1m80 높이에 무게 20㎏, 하드 케이스에 넣으면 40㎏이나 돼 웬만한 '완전 군장'을 훌쩍 뛰어넘는 더블베이스로 연주한 음반을 최근 잇달아 출시한 것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이호교(42) 교수와 '더블베이스 영재'로 일찌감치 주목받은 그 제자 성민제(19)가 주인공들이다. 스승은 더블베이스 협주곡 3곡을 협연한 음반(신나라)을, 제자는 협주곡과 독주곡을 고루 담은 첫 번째 독집 음반(유니버설 뮤직 코리아)을 각각 펴냈다.

과거

서울시향 더블베이스 단원 성영석(47)씨의 장남인 성민제는 14세 때인 2004년 스승 이 교수와 처음 만났다. 이 교수는 "당시 쿠세비츠키의 협주곡 1악장을 연주했는데, 테크닉은 이미 그때 완성되어 있었다. 자세 같은 기초를 제외하고는 크게 해줄 말이 없었다"고 했다. 그 뒤 제자는 스승의 길을 충실히 따라갔다. 더블베이스 최고의 명문 대회로 이 교수가 1996년 동양인 최초로 입상(4위)했던 쿠세비츠키 콩쿠르에서 2007년 제자 성민제가 동양인 첫 우승을 차지했다. 이 교수는 "나 자신은 놓친 1등을 제자가 대신 이뤄준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했다. 오는 9월에는 스승이 유학했던 독일 뮌헨 음대로 제자 역시 진학할 계획이다.

더블베이스로 음반을 잇달아 발표한 이호교 교수(왼쪽)와 제자 성민제. 스승은“내 소 리는 부러질 만큼 강한 데 비해, 민제의 음악은 항상 부드럽고 풍요롭다”고 평했다./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현재

더블베이스는 워낙 큰 덩치인 데다 주로 리듬이나 화음 파트를 맡는다. 이 때문에 "더블베이스는 가구가 아닙니다" "우리도 멜로디를 연주합니다"라고 설명해야 하는 설움도 있다. 하지만 지난 2007년 국내 첫 더블베이스 음반을 발표한 이 교수에 이어, 제자 성민제까지 독주(獨奏) 악기로서 '홀로 서기'의 가능성을 활발하게 모색하고 있다.

이 교수는 쿠세비츠키와 디터스도르프, 보테시니 등 '더블베이스 협주곡의 교과서'로 불리는 3곡을 동료인 정치용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지휘한 크누아(KNUA) 심포니와 녹음했다. "연주에 실제 보탬이 되는 교재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에 연주 장면을 녹화한 영상도 함께 제작했다.

성민제는 흔히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카르멘 판타지〉와 〈치고이너바이젠〉을 바이올린 못지않은 화려한 기교로 첫 음반에 실었다. 그는 "더블 베이스도 바이올린이나 첼로만큼 다양한 얼굴을 갖춘 악기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보테시니의 협주곡 2번은 두 사람의 음반에 모두 실려, 일종의 '사제 대결'이 펼쳐지기도 했다.

미래

성민제는 "선화예중 다닐 적에는 더블베이스를 전공하는 학생이 전교에서 저 혼자였지만, 지금은 학년마다 4~5명으로 늘었다"고 했다. 이 교수는 "더블베이스는 레퍼토리가 아직 많지 않기에 거꾸로 연주자 마음껏 작곡하고 편곡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며 "그렇기 때문에 연주자도 작곡법부터 편곡을 위한 컴퓨터 프로그램까지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민제 더블 베이스 리사이틀, 6월 19일 오후 8시 LG아트센터, (02) 780-5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