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출렁대고 북어는 춤을 추고

  • 박돈규 기자

입력 : 2009.05.14 03:30

연극 '템페스트' 무용 'Soul, 해바라기' 20일 개막

극단 미추의 연극 《템페스트(Tempest)》와 국립무용단의 한국무용 《Soul, 해바라기》의 공통점은 곡선(曲線)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전자의 무대에는 출렁이는 바다가, 후자의 무대에는 춤추는 북어가 있다. 5월 가장 주목받는 두 작품이 20일 나란히 개막한다.

 ◆좌초하는 꿈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외벽에 걸려 있는 연극 《템페스트(Tempest)》 포스터는 잊어야 한다. 먹구름과 번개, 거대한 파도 사이에서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배 한척을 그려놓았지만 실제 무대에서 이런 스펙터클은 없다. 일렁이는 파란 천과 흔들리는 돛대로 거센 파도를 표현하는 이 연극은 말 그대로 연극적이다.

작품의 무대는 사회 부적응자들이 모여 있는 요양원. 침대 몇개가 놓여 있을 뿐, 사실상 비어 있다. 세상의 끄트머리에 놓인 그들이 셰익스피어 원작의 연극《템페스트》를 준비하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실재와 허구가 뒤섞인다. 나라를 빼앗은 악의 무리들을 태운 배가 폭풍우로 난파돼 복수의 기회를 얻은 프로스페로(정태화)의 이야기는 지금 한국의 현실로 옮겨졌다.

《템페스트》는 셰익스피어가 쓴 마지막 희극으로 국내에서는 서울예술단의 뮤지컬 《태풍》 외에는 거의 공연되지 않았다. 번안을 한 극작가 배삼식은 "좌초하는 꿈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고, 연출가 손진책은 "인간에 대한 절망을 씁쓸하게 포착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극으로의 변신이다. 브랜드가 된 '토월정통연극시리즈' 11번째 작품. 최용진·서이숙·김동영·조원종 등이 출연한다. 6월 6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02)580-1300

(왼쪽 사진)《Soul, 해바라기》에서 춤추는 무용수들. 손에 북어를 쥐고 있다./국립극장 제공 (오른쪽 사진)연극《템페스트》에서 프로스페로 역을 맡 은 배우 정태화./예술의전당 제공

북어가 춤을 춘다

상모를 쓴 무용수 12명이 양손에 북어를 한 마리씩 쥐고 있다. 24마리 북어가 춤을 춘다. 무용수들은 북어를 맞부딪치거나 북어로 몸을 긁으면서 우스꽝스러운 동작을 뽑아낸다. 북어 머리를 본뜬 표정, 북어를 입으로 가져가는 것도 춤이다. 북어로 다듬이질을 하는 것 같은 동작도 있다.

국립무용단의 《Soul, 해바라기》에서 가장 유머러스한 건 북어춤이다. 그리움에 집중하는 이 작품에서 북어는 혼령(귀신)들이 등장하는 2막의 가장 중요한 소재다. 안무를 맡은 배정혜는 "우리 제사 풍습에 빠지지 않는 게 북어"라면서 "귀신들의 식탐을 재미있게 표현한 춤"이라고 했다. 개량한 살풀이와 손뼉춤, 아박춤, 부채방울춤도 진풍경이다.

2006년 초연한 《Soul, 해바라기》는 국립무용단 작품 중 다시 보고 싶은 공연 1위로 뽑혔다. 독일 재즈 그룹 살타첼로와 한국무용을 접목해 만든 히트작이다. 내년에는 독일 투어도 잡혀 있다. 왕(王)무녀로 출연하는 장현수는 "처음엔 무용수들이 음악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지만 재즈를 통해 한국 춤사위도 현대적으로 바뀐 느낌"이라고 했다. 23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02)2280-4115~6

◆ 난 소품용 북어… 본드와 페인트로 단장하죠

나는 《Soul, 해바라기》의 북어. 몸은 말라 직선이 됐지만 바다 속에서는 헤엄치는 곡선이었지요. 소품용은 길이 53㎝에 값은 7500원. 무대에 오르려면 냄새 없어지고 단단해지라고 액체 본드부터 바르고 수성 페인트를 칠합니다. 눈은 빨갛게, 지느러미는 까맣게, 몸통은 하얗게. 색을 입히고 말리고 칠하고 다시 말리고…. 무용수들이 쥐고 춤출 때는 다시 물을 만나 펄떡이는 것 같습니다. 북어춤은 '춤의 시(詩)'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