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5.06 02:59
광주왕실도자기 명장 이광씨
그만의 그윽한 백색 인정받아 기술 배우려 10년간 방랑생활 어깨 넘어 배운 것 밤에 실습
5일 오전 11시 광주시 실촌읍 신대리 백담도요에서 만난 도예인 백담(白潭) 이광(67)씨가 먼저 보여준 곳은 도자기를 굽는 가마였다. 이씨는 조선시대 가마터에 직접 흙벽돌을 쌓아 옛 그대로의 가마를 27년 전 만들었다. 8m 길이의 가마엔 나무장작이 쌓여 있었다. 이씨는 "가마에 도자기를 채우고 나무 장작에 불을 짚이다 보면 이틀 밤을 꼬박 새우곤 한다"라고 말했다. 가마터 옆엔 조선시대 만들어진 도자기들의 깨진 파편들이 봄 햇볕에 반짝거렸다.
이씨는 올해 광주시로부터 '광주왕실도자기명장'으로 선정됐다. 지난 48년간 오로지 도자기 제작에만 몰두해 전통기법, 전통문양에 기반을 둔 현대적 감각의 도자작품을 만들어낸 그의 끝질긴 장인정신을 인정받은 결과다. 이미 이씨는 1990년 경기도 우수공예기능인으로 지정됐고, 이후 2005년 경기 으뜸이로 선정되는 등 경기도 전통 도자기의 맥을 잇는 인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그의 백자는 푸른 빛깔과 흰 빛깔이 교차하는 독특한 기품으로 이름이 높다.
이씨는 올해 광주시로부터 '광주왕실도자기명장'으로 선정됐다. 지난 48년간 오로지 도자기 제작에만 몰두해 전통기법, 전통문양에 기반을 둔 현대적 감각의 도자작품을 만들어낸 그의 끝질긴 장인정신을 인정받은 결과다. 이미 이씨는 1990년 경기도 우수공예기능인으로 지정됐고, 이후 2005년 경기 으뜸이로 선정되는 등 경기도 전통 도자기의 맥을 잇는 인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그의 백자는 푸른 빛깔과 흰 빛깔이 교차하는 독특한 기품으로 이름이 높다.

◆초야의 전통 도자기 되살려
이씨가 전통 도자기를 배우는 과정은 파란만장했다. 초야를 떠돌며 유명한 도예가를 찾아다녔고, 생계는 옹기를 구워 팔며 지탱했다. 알아주는 이 없는 가난한 도예가의 삶이었지만 흙에 대한 집년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씨는 그의 출생부터 흙과 함께 운명이었다. 그는 경상북도 성주군 옹기골이라는 마을에서 1942년 태어났다. 옹기골은 60여 가구 중 40여개 가구가 이름 그대로 옹기로 일을 해서 먹고 사는 동네였다. 옹기는 흙을 빚어 만든 긴 줄을 쌓은 후 이를 방망이로 두드려 만들어졌다. 이씨의 선친 이판덕씨는 한 해 쌀 12가마니 정도가 나오는 농사를 지었지만 거의 옹기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했다. 이씨는 "선친이 지게로 옹기를 지고 4㎞를 걸어 장에 옹기를 내다 팔아 곡식과 반찬으로 바꿔왔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16살 무렵부터 물레를 돌리며 흙을 만졌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옹기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한다. 가난한 옹기 장인의 삶을 아들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이씨는 낮에 어깨 넘어로 옹기 만드는 모습을 보고 밤에 작업장에 몰래 들어가서 그 모습을 따라 하며 옹기 기술을 익혔다. 이씨는 밤에 작업장에 호롱불을 켜고 창문과 문틈을 가마대기로 가려가며 옹기를 만들었다. 이씨는 "전통 옹기가 점점 사라지며 버림을 받고 있어 이를 어떻게든 보존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후 이씨는 고향을 떠나 울산과 마산 등을 다니며 10년 동안 옹기를 배웠다.
이씨는 1970년 1월 비로소 도자기의 빛에 눈을 뜨게 된다. 이씨는 고려청자의 비취색을 탁월하게 낸다는 지순택 선생을 찾아 경기도 이천으로 올라왔다. 이씨는 지순택 선생의 문화생으로 8년간 청자, 분청, 백자를 배웠다. 하지만 선생은 고려청자 특유의 비취색을 내게 하는 유약의 비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씨는 유약을 개발하기 위해 쉬는 날이면 뒷산에 올라가 고사리나무, 느릅나무, 떡갈나무, 피나무를 가져와 태운 후 만든 잿물과 도석(陶石) 가루를 넣어가며 유약 만들기를 연구하기도 했다.
이씨가 전통 도자기를 배우는 과정은 파란만장했다. 초야를 떠돌며 유명한 도예가를 찾아다녔고, 생계는 옹기를 구워 팔며 지탱했다. 알아주는 이 없는 가난한 도예가의 삶이었지만 흙에 대한 집년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씨는 그의 출생부터 흙과 함께 운명이었다. 그는 경상북도 성주군 옹기골이라는 마을에서 1942년 태어났다. 옹기골은 60여 가구 중 40여개 가구가 이름 그대로 옹기로 일을 해서 먹고 사는 동네였다. 옹기는 흙을 빚어 만든 긴 줄을 쌓은 후 이를 방망이로 두드려 만들어졌다. 이씨의 선친 이판덕씨는 한 해 쌀 12가마니 정도가 나오는 농사를 지었지만 거의 옹기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했다. 이씨는 "선친이 지게로 옹기를 지고 4㎞를 걸어 장에 옹기를 내다 팔아 곡식과 반찬으로 바꿔왔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16살 무렵부터 물레를 돌리며 흙을 만졌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옹기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한다. 가난한 옹기 장인의 삶을 아들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이씨는 낮에 어깨 넘어로 옹기 만드는 모습을 보고 밤에 작업장에 몰래 들어가서 그 모습을 따라 하며 옹기 기술을 익혔다. 이씨는 밤에 작업장에 호롱불을 켜고 창문과 문틈을 가마대기로 가려가며 옹기를 만들었다. 이씨는 "전통 옹기가 점점 사라지며 버림을 받고 있어 이를 어떻게든 보존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후 이씨는 고향을 떠나 울산과 마산 등을 다니며 10년 동안 옹기를 배웠다.
이씨는 1970년 1월 비로소 도자기의 빛에 눈을 뜨게 된다. 이씨는 고려청자의 비취색을 탁월하게 낸다는 지순택 선생을 찾아 경기도 이천으로 올라왔다. 이씨는 지순택 선생의 문화생으로 8년간 청자, 분청, 백자를 배웠다. 하지만 선생은 고려청자 특유의 비취색을 내게 하는 유약의 비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씨는 유약을 개발하기 위해 쉬는 날이면 뒷산에 올라가 고사리나무, 느릅나무, 떡갈나무, 피나무를 가져와 태운 후 만든 잿물과 도석(陶石) 가루를 넣어가며 유약 만들기를 연구하기도 했다.

◆백담만의 도자기 빛깔 만들어내
이씨는 지순택 선생 밑에서의 8년간의 문하생 생활 끝에 1982년 도자기 공방 '백담도요'의 문을 열며 그만의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씨는 조선시대 백자를 집중적으로 만들기로 하고 조선시대 왕실 백자를 구워내던 광주의 가마터에 자리를 잡았다. 이씨는 허물어진 가마터에 흙벽돌을 쌓아 전통 가마를 만들어 조선 백자를 구워냈다. 이때 그는 호를 스스로 백담(白潭)이라고 지었다. "흰빛을 깊게 한다"는 뜻이었다.
결국 이씨는 1988년 '백자달항아리'로 당시 문화공보부가 주최한 전승공예대전 백자대호 특별상을 수상했다. 그의 '백자달항아리'는 햇볕에 비추면 푸른빛이 비치는 듯하면서도 그늘에선 흰빛이 나는 오묘한 빛깔을 보였다. 작품엔 그림이 없어 유약의 빛깔만으로 멋을 내야 하지만 그 빛깔만으로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비로소 그윽한 빛깔을 내는 그만의 도자기가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
이씨는 4월 25일부터 오는 24일까지 한달동안 광주 경기도자박물관에서 열리는 제12회 광주왕실도자기 축제에서 대표작인 '백자달항아리'는 물론 다기(茶器) 작품들을 선보인다. 그의 다기는 복숭아 모양을 한 현대적인 느낌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기의 뚜껑엔 복숭아잎 모양을 내고 있으며, 손잡이는 복숭아 나무줄기로 만들었다. 이 외에도 축제에선 막사발 모양의 '다완' 6점, 찻상 2점 등이 같이 전시한다.
이씨는 지순택 선생 밑에서의 8년간의 문하생 생활 끝에 1982년 도자기 공방 '백담도요'의 문을 열며 그만의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씨는 조선시대 백자를 집중적으로 만들기로 하고 조선시대 왕실 백자를 구워내던 광주의 가마터에 자리를 잡았다. 이씨는 허물어진 가마터에 흙벽돌을 쌓아 전통 가마를 만들어 조선 백자를 구워냈다. 이때 그는 호를 스스로 백담(白潭)이라고 지었다. "흰빛을 깊게 한다"는 뜻이었다.
결국 이씨는 1988년 '백자달항아리'로 당시 문화공보부가 주최한 전승공예대전 백자대호 특별상을 수상했다. 그의 '백자달항아리'는 햇볕에 비추면 푸른빛이 비치는 듯하면서도 그늘에선 흰빛이 나는 오묘한 빛깔을 보였다. 작품엔 그림이 없어 유약의 빛깔만으로 멋을 내야 하지만 그 빛깔만으로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비로소 그윽한 빛깔을 내는 그만의 도자기가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
이씨는 4월 25일부터 오는 24일까지 한달동안 광주 경기도자박물관에서 열리는 제12회 광주왕실도자기 축제에서 대표작인 '백자달항아리'는 물론 다기(茶器) 작품들을 선보인다. 그의 다기는 복숭아 모양을 한 현대적인 느낌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기의 뚜껑엔 복숭아잎 모양을 내고 있으며, 손잡이는 복숭아 나무줄기로 만들었다. 이 외에도 축제에선 막사발 모양의 '다완' 6점, 찻상 2점 등이 같이 전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