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4.30 08:33

[OSEN=이정아 기자]‘건반 위의 지휘자’‘한국의 베토벤’‘최연소 연대 음대교수’ 등은 요즘 가장 각광받고 있는 피아니스트 유영욱(32)을 가리키는 수식어다. 유영욱은 피아노를 연주할 때는 더없이 열정적인 사람이고 그 밖에서는 그 누구보다 진솔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2007년 베토벤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한 유영욱은 2008년 독일, 네덜란드, 캐나다, 일본, 헝가리, 루마니아, 미국, 폴란드 등 세계 여러 도시의 메이저 무대에서 단독 리사이틀을 수십 차례 가졌다. 2008년 6월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서 첫 리사이틀을 열기도 했다. 화려한 경력의 유영욱은 지난달 '베토벤 32'라는 음반을 발표하고 한국 팬들에게 한걸음 더 다가왔다.
봄빛이 완연한 초봄,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연세대학교 음대의 한 강의실에서 그를 만났다. 올해부터 교수로 교단에 선 그의 방에는 갓 들여놓은 듯한 책상의 나무 냄새로 가득했다.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두 대의 피아노가 눈에 띄었다.
# 교수로 임용된 지 이제 두 달!
유영욱은 최연소로 이 학교 음대 교수로 임용됐다. 학생들과 나이차이도 크지 않아 재미있는 일이 많을 것 같다.
학생들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그는 “원래 가르치는 일 자체를 좋아한다. 친구들하고 게임만 해도 훈수 두는 것을 좋아하고 연애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코치를 해 주려고 한다. 내 스스로 잘하는 것도 기쁘지만 남을 가르치면서 안되던 것이 잘 풀리는 것을 볼 때의 느낌은 정말 강렬하다. 아마도 가르치는 게 내 업인가 싶다”고 말했다.
강단에 서는 만큼 그 나름대로 준비도 많이 한다. 인간 대 인간으로 카운슬링을 많이 해 주고 텔레비전을 보고 책을 읽으면서 순간순간 느끼는 것을 학생들에게 전하려고 한다. 이렇게 삶에 관심을 갖는 것은 악기 연주도 결국에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유영욱은 “음악 실력이란 게 테크닉도 물론 중요하지만 자신감이라든지 유연함이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잘 나올 수 없는 것이다. 테크닉도 심리적인 것이다. 이제는 경험이 많아서 무엇인가 잘 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면 어떤 종류의 심리적인 문제 때문에 안 되는 것인지 느낄 수 있다. 결국 심리적인 부분을 치유하는 것이 열쇠다”라고 설명했다.
유영욱은 학생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항간에는 학생들 사이에서 '유사모'(유영욱 교수를 사랑하는 이들의 모임)가 발족 됐다는 말도 들린다. 이 같은 말에 그는 “누군가 내가 인기가 있다고 말을 해주기는 하더라. 그런데 여기 방에 들어와 있으면 그런 거 잘 모른다. 만약 인기가 많다면 그것은 아마 첫 번째로 나이 때문일 것이고 다음은 연주를 좀 하다가 들어와서 학생들하고 친숙하게 지내려고 하는 마음이 통해서 일 것 같다. 어떻게 봐도 나를 보면서 권위적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고 말하며 쑥스러워했다.
# 10살 때 첫 작곡 발표회를 갖다!
유영욱은 10살 때 첫 작곡 발표회를 가진 것으로도 유명하다.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표현한 ‘슬픈 노래’는 그 당시 평단으로부터 “흠 잡을 데 없이 완벽한 곡이다”라고 호평을 받았다.
어린 나이에 작곡을 시작한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유영욱은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인생이 조금 달라졌을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는 말로 사랑하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사실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는 내가 뭐든지 좀 느렸다. 그 때는 내 주위의 모든 사람이 나보다 더 똑똑해 보였다. 아버지는 내가 다른 아이들보다 ‘모자라다’라고 생각하신 상태로 돌아가셨다. 그 때 아버지는 ‘너는 남들보다 뛰어나려고 하지 말고 보통 사람 정도만 해라’라고 말하셨다. 아버지가 계속 살아계셨다면 어쩌면 위압감을 더 크게 느꼈을 것도 같다. 아버지들이 주는 특유의 위압감이 있지 않냐”고 밝혔다.
이어 “아마 모자란 아이로 좀 오래가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우리 아버지는 굉장히 똑똑하신 분으로 권위적이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떤 부분에서는 사고가 좀 더 자유로워진 나고, 자라면서는 마찰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살아계셨다면 지금쯤은 우리는 정말 말이 잘 통하는 부자지간이 됐을 것 같다”고 전했다.
이렇게 일찍 아버지를 여읜 그를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해준 사람은 다름아닌 어머니였다. 그는 “사랑이 많으신 우리 어머니”라는 말로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을 표현했다. 넉넉지 않은 형편 속에서도 어머니는 한 번도 음악을 그만두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또 어떤 말이든 유영욱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 이제는 말이 좀 통하는 사람이 좋다!
꽃도 피고 생기가 넘치는 캠퍼스를 거닐다 보면 문득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도 같다. 현재 여자친구가 없다는 유 교수는 어렸을 때는 귀엽고 애교 많고 스타일이 좋았는데 이제는 말이 통하고 느낌이 통하는 사람이 좋다. 또 배우자는 너무 야망이 크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유영욱은 “지금까지 만나왔던 분들을 보면 연상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굳이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성숙한 생각을 가진 연하도 많으니 나이에는 그렇게 연연하지 않는다. 예전에 비해 사람 보는 폭이 더 넓어졌다. 또 야망이 너무 크지 않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 음악만 아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유영욱이 음대를 가겠다고 했을 때 “왜 음대를 가냐. 거기 가면 아무것도 못하는데”라고 말하며 말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말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음악만 아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다양한 분야를 공부했다. 역사, 과학, 인문학, 철학 책을 찾아 읽고 그쪽 부분의 지식도 쌓으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종합 대학에 있다는 것이 좋은 것 중의 하나는 다른 분야의 교수들과 교류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당신은 감성적인 사람인가요, 이성적인 사람인가요’ 묻는다면 유영욱은 후자 쪽이다. 그는 “나는 기본적으로 대부분은 이성적은 것 같다. 과학적인 것을 좋아해 생각하는 방법도 과학적인 편이다. 하지만 음악가로 연주를 ‘연주 아니면 못 산다’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번의 연주에 모든 것을 담아 그 순간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연주를 한다. 그런 부분은 연마를 한다”고 말했다.
유영욱은 평소에는 글 쓰는 것도 좋아한다. 이렇게 음악을 하지 않았다면 무엇을 하고 있었을지, 혹시 자신이 선택한 이 피아니스트의 길을 후회한적은 없을지 궁금했다. 그는 “기본 성향이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것을 좋아하다 보니 새로운 지식을 찾아 보는 것은 어땠을까 하는 그런 아쉬움은 든다. 하지만 가르치는 것은 천직 인 것 같고 피아니스트라는 직업이 단순히 피아노, 테크닉을 떠나서 어떤 사람에게 심리적인 체험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의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사람들에게 다양한 체험을 안겨주고 싶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혹시 좋아하는 가요는 있냐고 묻자 015B의 ‘슬픈 인연’, 박인희의 ‘모닥불 피워놓고’ 를 꼽았다. 가사가 가슴에 와 닿는다는 이유였다. 유영욱은 “그 당시에는 정말 이렇게 아름다운 가사를 가진 노래가 많았다. 요즘 노래는 너무 어린 아이 위주라서 일회성이 많은 것 같다”며 가슴을 울리는 서정적인 노래에 대한 그리움도 나타냈다.
2007년 베토벤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한 그를 보며 평단에서는 “베토벤이 피아노를 친다면 유영욱처럼 연주했을 것이다”라며 흥분했다.
클래식계를 휩쓰는 베토벤 열풍의 중심에서 유영욱은 ‘한국의 베토벤’이라는 수식어를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그는 “베토벤이라는 인물이 주는 중후한 느낌은 나쁘지 않다. 베토벤이 음악을 할 당시는 오히려 지금보다 어느 부분에서는 좀 더 자유로웠던 것 같다. 베토벤의 자유로움 가운데서도 진지함, 심오함을 나름 표출하려고 노력했다. 베토벤의 깊은 맛을 내 연주를 들으며 느낄 수 있기를 소망한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다시 볼 사람과 함께 호흡하고 싶고 그래서 공연도 더 많이 하고 음반도 더 발표할 것이라는 유영욱은 5월 17일 LG아트센터에서 공연을 열고 국내 팬들을 만난다.
열정과 냉정 사이를 넘나들며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고 있는 유영욱, 앞으로도 그의 이름 석자가 많은 이들로 하여금 설렘과 행복으로 다가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happy@osen.co.kr
<사진>엘리정 매니지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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