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지났어도 인간은 여전히 잔인"

  • 박돈규 기자

입력 : 2009.04.30 03:48

현대 전쟁터 무대로 한 야외극 '맥베스' 연출가 쉬코탁

폴란드 연출가 파베우 쉬코탁. 대사보다 움직임·제스처·상징을 중시하는 그는 “광장이든 거리든 공간이 연기 방식을 결정한다”고 했다./의정부음악극축제 제공

경기도 의정부시청 앞 잔디광장은 5월 15~16일 밤 노천극장이 된다. 오후 8시30분, 천연 암전(暗轉) 상태가 되면 폴란드에서 온 야외극 《맥베스》의 횃불이 타오른다. 마녀들이 등장하고 헤드라이트를 밝힌 오토바이들이 질주한다. 30m×18m의 가설무대에 전쟁터가 펼쳐진다.

5월 1일 개막하는 의정부음악극축제(www.umtf.or.kr)에서 강렬한 체험으로 남을 작품이 바로 이 《맥베스》다. 2007년 에든버러 축제(영국) 전회 매진, 2008년 테헤란 연극제(이란) 연출가상을 차지한 이 음악극의 연출가 파베우 쉬코탁(Szkotak·44)은 이메일 인터뷰에서 "전쟁은 갈등을 해결하는 가장 잔인한 방법"이라면서 "TV나 컴퓨터에 붙잡혀 사회로부터 점점 격리되고 있는 사람들에게 집단체험의 충격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의정부음악극축제는 지난해 국고 지원 축제 평가에서 A등급을 받았다. 올해는 캐나다 음악 서커스 《로프트(Loft)》, 노르웨이에서 온 수녀원 이야기 《컨벤트(Convent)》 등 국내외 공식 초청작 11편으로 속을 채웠다. 의정부는 서울 대학로에서 지하철로 45분 거리. 쉬코탁은 "야외공연은 현실 속에서 허구를 본다는 게 장점이고, 관람도 일종의 '여행'"이라고 했다.

올해 의정부음악극축제 폐막작으로 강렬한 마침표를 찍을 야외극《맥베스》. 셰익스 피어 원작의 배경을 현대의 전쟁터로 바꿨다./의정부음악극축제 제공
―배경이 현대의 전쟁터다.

"400년 전 셰익스피어가 던진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인간의 어두운 욕망이 달라졌나? 무기가 변했을 뿐 잔인성은 그대로다. 관객은 이 공연에서 먼지 뒤집어쓴 과거가 아니라 동시대의 현실을 보게 된다."

―흔히 야외극은 가벼운 소재를 택하는데 당신은 정반대다.

"불꽃놀이나 서커스에 비하면 만들기 힘들지만 그 대신 배우·관객의 만족도가 높다. 내게 연극은 오락이 아니다. 사회 현상을 탐구하는 실험이고, 메시지를 담는 그릇이다. 전쟁·폭력·권력욕은 신문·TV가 아닌 관객 눈앞에서 꿈틀거릴 때 더 강력하게 작동한다."

―역사는 실수를 반복한다.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잔혹한 전쟁, 끝없는 공포를 겪은 사람은 작아지고 위축된다. 갈등을 풀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연극은 인간 본능의 어두운 측면을 관찰하기에 좋은 장르다. '인간에 대해 알자'가 내 연극의 목표다."

―오토바이의 차가운 금속성과 불쾌한 소음은 어떤 장치인가?

"오토바이는 현대의 말(馬)이다. 강하고 때론 위협적인 기계다. 마녀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장대를 타고 다닌다. 금속(문명)과 나무(자연)의 대비를 강조하려고 했다. 이 공연에는 불쾌한 기계음부터 교향악, 서정적인 오페라까지 소리가 다양하다."

―마녀들에게 부르카(눈만 내놓는 장옷)를 입혔다.

"이 드라마는 그들이 핵심이다. 운명의 실타래를 묶기 때문이다. 테헤란의 벽화에서 '현대의 마녀'를 떠올렸다. 전쟁터에서 사랑하는 남편이나 아들을 잃고 절망에 빠져 초자연적으로 변한 여인이다. 얼굴을 가리면 신비감과 공포감이 생긴다."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나라에서 공연하는데.

"1998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DMZ에 가봤다. 그곳의 선전전은 베를린 장벽이 있을 때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의 풍경 그대로였다. 남북을 가르는 벽, 마음에 쌓아 올린 벽은 언젠가 무너지게 돼 있다."

▶영어 공연으로 한글 자막이 제공된다. 무료. (031)828-5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