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진 인도(印度)냐… 일어서려는 인도(印度)냐

  • 손정미 기자

입력 : 2009.04.21 02:56

국립현대미술관 '인도 현대미술' 전(展)

경기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중앙홀에 들어서면 흰색에 가까운 회색 코끼리가 누워 있다.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코끼리는 방금 쓰러진 것인지, 아니면 일어서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인도 작가 바르티 케르의 작품 〈피부는 자신의 것이 아닌 언어를 말한다〉로, 광섬유와 수지로 만든 실물 크기의 코끼리이다.

바르티 케르는 인도 여성이 눈썹 사이에 붙이는 빈디를 모티프로 작업해온 작가로, 코끼리 온몸에 정충 모양의 빈디를 새겼다. 인도를 상징하는 코끼리가 고속성장의 과속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인지, 경제도약을 위한 에너지를 발산하려는 것인지 해석은 관람자의 몫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기획한 《인도 현대미술-세 번째 눈을 떠라》전(展)은 바르티 케르처럼 인도의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이를 관람자와 대화하고 싶어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27명 작가의 110여점 작품은 회화뿐 아니라 조각과 설치, 사진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다.

인도현대미술전에 나오는 바르티 케르의〈피부는 자신의 것이 아닌 언어를 말한다〉./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수보드 굽타의〈오케이 밀리〉./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번에 소개되는 작가들은 세계 미술계에서 통하는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인도라는 정체성을 놓지 않아 주목받는다. 바르티 케르는 세계적인 미술전문지 아트뉴스(ARTnews) 4월호에 소개됐으며, 세계적인 경매회사인 크리스티의 오너 프랑소아 피노와 찰스 사치 같은 세계적인 컬렉터가 주시하는 작가이다.

작가들은 인도의 경제성장과 함께 드러나는 도시의 창조와 파괴에 대해 할 말이 많다. 헤마 우파드야이는 〈고요한 이주(移住)〉를 통해 뭄바이 같은 대도시의 혼돈과 공허함을 표현하고 있다. 비반 순다람의 〈메탈 박스〉는 콜라 같은 탄산음료의 버려진 캔을 통해 경제성장의 소비와 다국적 기업의 지배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 세계 미술계에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수보드 굽타의 〈오케이 밀리(OK Mili)〉는 인도 가정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주방용기를 쌓아 올려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수보드 굽타는 바르티 케르의 남편이기도 하다. 아심 푸르카야스타의 〈안경 안 쓴 검은 간디〉는 인도의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간디의 모습을 바꿔 개인의 인식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인도 국경 주변에서 살았던 작가에게 간디는 국부가 아니라 나이 든 남자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전시의 마지막은 수보드 굽타의 벽에 세워진 〈문〉으로 마무리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남인 학예연구사는 "황금색이 칠해진 문을 통해 관람객에게 '문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또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란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인도 현대미술전은 최근 부상하고 있는 인도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과 함께, 전통과 현대가 제대로 화해하지 못하고 빈부 격차가 커지는 우리 현실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번 전시는 일본 모리미술관이 2008년 11월 22일부터 올해 3월 15일까지 전시했던 《가자! 인디아-인도미술의 신시대》의 바통을 우리 국립현대미술관이 이어받은 것이다. 전시는 6월 7일까지이며, 입장료는 성인 5000원 초·중·고생 3000원. (02)2188-6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