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4.08 03:13 | 수정 : 2009.04.08 07:33
명동예술극장 34년만에 복원
"목이 메어 말이 잘 안 나온다. 내가 태어나 뼈가 자라고 연극인으로 완성된 자리다. 내 고향, 어머니의 품 같은 곳에 앉으니 목이 멘다. 극장은 잘 보이고 잘 들려야 한다는 점에서 이 극장이 최고였다."
34년 만에 복원돼 오는 6월 문을 여는 명동예술극장(옛 국립극장)에서 원로배우 장민호씨가 말했다. 6월 5일 개관작으로 막이 오르는 연극 《맹진사댁 경사》(오영진 작·이병훈 연출)에서 다시 명동 무대를 밟는 장씨는 "영광스럽다"며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지만 있는 힘 다해 멋진 모습을 보여 드리겠다"고 했다.
34년 만에 복원돼 오는 6월 문을 여는 명동예술극장(옛 국립극장)에서 원로배우 장민호씨가 말했다. 6월 5일 개관작으로 막이 오르는 연극 《맹진사댁 경사》(오영진 작·이병훈 연출)에서 다시 명동 무대를 밟는 장씨는 "영광스럽다"며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지만 있는 힘 다해 멋진 모습을 보여 드리겠다"고 했다.
명동예술극장이 개관에 앞서 7일 내부를 공개했다. 1934년 일본 건축가가 지었다는 바로크 양식의 우아한 외벽은 그대로였다. 내부공사로 지하 2층~지상 5층 건물이 됐고 2~4층에 중극장(국내 기준 400~800석)을 품었다. 무대는 폭 12m, 깊이 10m, 높이가 7m였고, 연출 공간을 상하로 확장할 수 있는 트랩 테이블(trap table) 방식이었다. 말발굽형으로 배치된 객석(552석)과 무대의 거리(1층 최대 13.5m)가 짧았다.
명동예술극장은 '연극을 전문으로 하는 대관(貸館) 없는 공연장'을 표방했다. 극단이 아닌 극장이 프로듀서가 돼 기획·제작을 주도하면서 극작가·연출가·배우·스태프의 다양한 결합을 모색하겠다는 것이다. 구자흥 극장장은 "명품 레퍼토리 제작과 대중성 확보를 통해 '명동 브랜드'라는 신용을 쌓을 것"이라며 "표값이 억울하지 않게 하겠다"고 밝혔다.
명동은 1970년대까지 한국 공연예술의 1번지였다. 지금의 명동예술극장은 1934년 820석의 명치좌(明治座)로 출발, 해방 후 1961년까지는 시공관(市公館), 1973년 남산에 국립극장이 생기기 전까지는 국립극장이었다. 유치진 이해랑 등 연출가, 김동원 장민호 강계식 백성희 김진규 최무룡 허장강 도금봉 최은희 황정순 같은 배우들이 이 무대에 청춘을 바쳤다. 1975년 대한투자금융에 매각된 뒤 1994년부터 명동상가번영회와 연극인들이 국립극장 되찾기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 서명 운동에 처음 서명한 사람이 김수환 추기경이었다.
개관작 《맹진사댁 경사》는 잔치 형식의 희극이다. 무대에는 맹진사 신구를 비롯해 장민호·전무송·서희승·서상원·장영남 등이 오른다. 원로배우 최은희,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도 카메오로 출연한다.
7월에는 박정자의 명연기(온달모)로 기억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최인훈 작·한태숙 연출), 9월에는 임영웅 연출의 《밤으로의 긴 여로》(이해랑 20주기 추모 공연), 12월엔 이윤택이 현대적으로 해석한 《베니스의 상인》이 이어진다. 개관에 앞서 5월 11일에는 연극인들을 초대해 '집들이'를 한다.
개관작 《맹진사댁 경사》는 잔치 형식의 희극이다. 무대에는 맹진사 신구를 비롯해 장민호·전무송·서희승·서상원·장영남 등이 오른다. 원로배우 최은희,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도 카메오로 출연한다.
7월에는 박정자의 명연기(온달모)로 기억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최인훈 작·한태숙 연출), 9월에는 임영웅 연출의 《밤으로의 긴 여로》(이해랑 20주기 추모 공연), 12월엔 이윤택이 현대적으로 해석한 《베니스의 상인》이 이어진다. 개관에 앞서 5월 11일에는 연극인들을 초대해 '집들이'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