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오케스트라 아닌 실내악 버전 박력은 없어도 뛰어난 앙상블

  • 김성현 기자

입력 : 2009.04.06 03:13

'팀프 앙상블'이 연주한 말러의 곡들

오케스트라는 물론이고 독창과 합창, 때로는 어린이 합창까지 기용해서 최대 1000여명에 이르는 '블록버스터 교향곡'을 쓴 작곡가가 바로 말러(Mahler)다. 말러에게 교향곡은 노래였고, 거꾸로 가곡은 교향곡이기도 했다. 노래와 기악이 그에게는 둘이 아니라 하나였던 것이다.

통영국제음악제의 영어 약자인 '팀프(TIMF) 앙상블'이 말러의 곡 가운데 가장 교향곡과 닮아있는 가곡인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와 가장 가곡 같은 교향곡인 〈대지의 노래〉를 나란히 한 무대에 올렸다. 지난 2일 통영국제음악제 폐막 연주회에 이어, 4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도 같은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이날 두 곡 모두 대형 오케스트라를 위한 원곡이 아니라, 후대에 실내악 앙상블을 위해 편곡한 버전으로 공연됐다. 말러 특유의 오케스트라 박력은 줄어들었지만, 실내악의 정취와 앙상블의 밀도가 대신 높아졌다. 100여명이 연주하던 곡을 15명이 연주하니, 악기 하나하나에도 오케스트라를 담아내야 한다. 팀프 앙상블은 그 밀도를 자연스럽게 살려나갔다.

알토 멜린다 파울센이 팀프 앙상블과 말러의〈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를 연주하고 있다./통영국제음악제 제공
〈대지의 노래〉는 중국 당대(唐代) 시인의 작품에 작곡가가 곡을 붙였다. 동양의 도가 사상을 세기말 유럽의 낭만주의로 채색한, 기묘한 문화 융합이 낳은 걸작이다. 이백의 작품에 바탕한 첫 곡 '현세의 고통을 노래한 주가(酒歌)'는 마치 지뢰밭처럼 깔려 있는 고음(高音) 다발 때문에 고역을 안기는 노래이다.

독일 도르트문트 극장에서 활동 중인 테너 김석철은 그 고통스러운 탄식을 흔들림 없는 고음으로 안정감 있게 처리했다.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에 이어 〈대지의 노래〉에서도 독창자로 나온 알토 멜린다 파울센은 어둡고도 짙은 소릿결로 시종 진지하게 비통함과 쓸쓸함을 그렸다.

현대음악 전문 단체를 표방했던 '팀프 앙상블'은 최근 모차르트나 도니체티 등 고전과 낭만주의 오페라 반주까지 담당하며 영역 확장을 시도했다. 좋게 말해 '업종 다양화'지만, 자칫 '갈지[之]자 행보'로 비칠 소지도 다분했다. 이번 말러 프로젝트를 통해 팀프 앙상블은 핵심 역량에 집중할 때 본 모습에도 충실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재확인했다.

이날 함께 연주한 작곡가 유진선의 2006년 작 〈고저, 장단, 강약〉에서는 높고 낮고, 길고 짧고, 거세고 여린 소리의 다양한 속성을 프리즘에 투과시킨 뒤 마지막 4악장에서는 즉흥성을 곁들여 실험했다. 팀프 앙상블은 16일 금호아트홀에서 바흐의 〈푸가의 기법〉을, 5월 9일 고양아람누리에서는 20세기 작곡가 에드가 바레즈의 곡을 집중조명한다. (02)3474-8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