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의 힘 vs. 상징의 힘 무용 '지옥'과 연극 '파우스트' 이번 주말 격돌

  • 박돈규 기자

입력 : 2009.04.02 06:42

어떤 공연은 이름만으로도 관객을 흔든다. 4~5일 경기도 성남아트센터에 오르는 에미오 그레코 안무의 무용 《지옥(Hell)》과 3~5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를 채우는 에이문타스 네크로슈스 연출의 연극 《파우스트》가 그렇다. 그레코는 '개념 무용'이라는 트렌드를 거부하고 몸의 움직임으로 승부하고, 네크로슈스는 상징과 오브제(objet·사물)로 고전을 재해석한다. 이번 주말 성남과 서울에서 벌어지는 빅 매치. 관객은 바쁘다.

몸과 빛으로 빚는 춤

그레코답게 《지옥(Hell)》도 무대는 단순하다. 천국의 문과 앙상한 지옥의 나무가 있을 뿐이다. 그레코는 검은 막(幕)을 배경으로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빛으로 작업하는 안무가다. 빛은 춤의 원초적인 재료인 몸에 집중하기 위한 장치다.

그레코 자신을 비롯한 무용수들은 1970~80년대 디스코부터 탱고, 베토벤의 교향곡 《운명》 등이 흐르는 빈 무대를 움직임으로 채워나간다. 이질적인 것들의 충돌과 길항 사이에서 거친 에너지를 끌어내는 것이다. 역동적인 움직임만으로도 새로운 시·공간이 열린다는 것을 증명한다. 알몸을 노출하는 대목도 있다.

왜 제목이 《지옥》일까. 무대는 요란한 카바레 장면으로 열려 갑자기 조용해지고 종소리가 들려온다. 채움과 비움, 또는 그 진폭 사이에서 관객이 지옥의 공포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지옥》은 2007년 유럽 비평가들과 프로듀서들이 뽑은 최고의 작품이다. 그레코는 10일 같은 무대에서 한국을 비롯한 6개국 합작으로 《비욘드(Beyond)》를 세계 초연한다. (031) 783-8000
그레코 안무의 현대무용《지옥》./성남아트센터 제공

오브제를 이용한 펀치력

네크로슈스는 말[語]을 아끼고 물·불·돌·흙 같은 자연의 사물들로 관객을 두들겨 패는 연출가다. 한국 관객은 그의 《햄릿》에서 얼어붙은 샹들리에와 부슬비처럼 떨어지는 물, 《맥베드》에서 수직낙하 하는 수백 개의 돌덩이를 봤다.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데 펀치력이 얼얼하다.

괴테의 역작 《파우스트》는 지식의 무력함에 절망한 파우스트 박사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고 쾌락에 빠지는 이야기다. 1부만 무대로 옮겼지만 공연 시간이 4시간에 이르는 마라톤 연극이다.

네크로슈스는 밧줄을 친친 감아 인간의 뇌(腦·정신)를, 거대한 뼈다귀로 육신을 형상화한다.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어 책들을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의자, 그레첸이 거울 조각을 씹어먹을 때 들리는 불협화음, 눈을 감은 채 손을 뻗고 움직이는 파우스트의 종종걸음, 무대 한가운데서 제자리를 맴도는 쟁기…. 메피스토펠레스가 밧줄을 주무르며 인간(파우스트)을 조종하는 장면은 사진만으로도 강렬하다. 중간에 두 번 쉰다. 리투아니아어로 공연하며 한글 자막이 제공된다. (02)2005-0114

네크로슈스 연출의 연극《파우스트》./LG아트센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