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4.02 06:40
삼일로 창고극장서 연출 맡아
70석 소극장의 백열등 아래 서 있는 남자는 모자부터 옷까지 온통 검은색이었다. 미국 실험극의 거장 리 브루어(Breuer·72)였다.
만우절인 1일 오후 서울 삼일로 창고극장. 대학로에서 떨어진 채 악전고투하고 있는 이 소극장에서 브루어가 한국 배우들과 함께 연극을 올린다는 '거짓말 같은' 기자회견이 열렸다. 리 브루어가 말했다.
"이상(李箱·1910~1937)의 시를 읽는 순간 소설가 카프카, 시인 랭보가 겹쳐졌다. 그는 폐병에 걸려 있었고, 여자관계가 복잡했고, 초현실주의적인 작가였다. 전위적이었고 세계적인 공감을 얻을 만한 시인이었다."
리 브루어는 5월 1일 창고극장에서 개막하는 연극 《이상, 열셋까지 세다》를 연출한다. 사연은 깊었다. 1990년대 말 뉴욕에서 재미(在美) 극작가 노성이 영어로 쓴 이 희곡을 처음 접한 그는 "다도(茶道)를 표현하는 대목에서 찻잔에 코카콜라를 담아왔는데 너무 웃겨 의자에서 굴러 떨어질 뻔했다"고 했다. 그리고 2000년 브루어는 서울연극제에서 이 작품을 초연했지만 이상 역을 맡은 배우가 장염에 걸려 공연은 사흘 만에 중단됐다.
만우절인 1일 오후 서울 삼일로 창고극장. 대학로에서 떨어진 채 악전고투하고 있는 이 소극장에서 브루어가 한국 배우들과 함께 연극을 올린다는 '거짓말 같은' 기자회견이 열렸다. 리 브루어가 말했다.
"이상(李箱·1910~1937)의 시를 읽는 순간 소설가 카프카, 시인 랭보가 겹쳐졌다. 그는 폐병에 걸려 있었고, 여자관계가 복잡했고, 초현실주의적인 작가였다. 전위적이었고 세계적인 공감을 얻을 만한 시인이었다."
리 브루어는 5월 1일 창고극장에서 개막하는 연극 《이상, 열셋까지 세다》를 연출한다. 사연은 깊었다. 1990년대 말 뉴욕에서 재미(在美) 극작가 노성이 영어로 쓴 이 희곡을 처음 접한 그는 "다도(茶道)를 표현하는 대목에서 찻잔에 코카콜라를 담아왔는데 너무 웃겨 의자에서 굴러 떨어질 뻔했다"고 했다. 그리고 2000년 브루어는 서울연극제에서 이 작품을 초연했지만 이상 역을 맡은 배우가 장염에 걸려 공연은 사흘 만에 중단됐다.

《이상, 열셋까지 세다》가 한국에서 부활한 건 이메일 한 통 때문이었다. 창고극장의 정대경 대표가 지난해 "우리에게 조그맣고 낡았지만 소중한 극장이 있다. 당신이 이 작품을 우리 극장에서 연출해 줬으면 한다"고 청했고, 브루어의 답은 놀랍게도 'Yes(예스)'였다. 그는 "나도 폐광촌에서 연극을 시작했고 《이상, 열셋까지 세다》를 제대로 마무리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리 브루어는 1970년 마부 마인(Mabou Mines) 극단을 창단해 베케트의 세 작품을 연출했고, 오프브로드웨이 최고의 영예인 오비상(Obie award)을 거푸 차지했다. 성(性)을 바꿔 공연한 《리어왕》, 왜소증 남자를 등장시킨 《인형의 집》, 모건 프리먼 등 흑인 배우들로만 공연한 《콜로노스의 가스펠》로도 유명하다. 브루어는 "이번 연극 역시 다수와 소수 사이의 대결을 다룬다는 점에서 내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고 했다.
《이상, 열셋까지 세다》는 이상의 시 〈날개〉〈오감도〉등을 재구성해 이상의 머릿속을 펼쳐 보여주는 연극이다. 이상과 기생 금홍이, 화가 구본웅이 등장하고 영상·음악·미술·인형극 등이 어우러진다. 브루어는 "비극과 유머를 혼융시키면서 이상의 내면을 설치미술 형식으로 풀 것"이라고 말했다.
삼일로 창고극장은 1975년 에저또 극장으로 출발해 1976년 지금의 간판을 걸었으며 국내 최장수 민간 소극장 자리를 지켜왔다. 현대연극의 거장과 작업하는 이번 기회가 "아직 건재하고 있다는 절규, 인큐베이팅 공간으로서의 선언"(정대경)인 셈이다.
브루어는 이 창고극장에 대해 "무대와 객석이 가깝고 균형감도 좋아서 보는 순간 마음에 들었다. 주류 연극계(대학로)와 떨어져 있는 게 현실과 거리를 뒀던 이상의 일생과 닮은꼴"이라며 웃었다.
▶공연은 6월 28일까지 삼일로 창고극장. (02)319-8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