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ABC] "공연 만족 못하시면…" 클래식도 환불 시대

  • 김성현 기자

입력 : 2009.04.02 05:34

클래식 음악도 드디어 '환불 대상'에 올랐습니다. 지난 2월 영국 버밍엄의 심포니 홀에서 벌어진 재미난 실험입니다. 작곡가이자 지휘자로 유명한 에사 페카 살로넨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쇤베르크의 〈구레의 노래〉를 들려주었지요. 연주회장은 공연을 앞두고 "만족하지 않으면 티켓 가격을 되돌려 드린다"는 공고를 과감하게 내붙였습니다.

쇤베르크는 20세기 음악사에서 무조(無調) 음악이나 12음 기법 등 까다로운 작법(作法)으로 악명 높습니다. 이 음악당의 프로그램 감독인 폴 킨(Keene)은 "평균적인 콘서트 관객은 그의 음악을 여전히 난해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작품을 사랑하기에 사람들이 공연장을 찾아와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도록 도전하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구레의 노래〉는 무조 음악이나 12음 기법을 본격적으로 적용하기 이전의 초기작입니다. 그렇기에 작품에도 후기 낭만주의적인 열정과 기운이 감돌고 있지요.

대량 환불 사태가 일어났다는 후문은 아직 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공연장에서 충분히 즐겨놓고 정작 나갈 때는 환불을 요구하는 '무임 승객(free rider)' 문제는 골칫거리입니다. 연주자 입장에서는 오로지 감동의 보편성만을 믿고서 무대에 올라가야 하기에 배수진(背水陣)을 치는 심경일 것입니다.

영국의 음악평론가 리처드 모리슨은 "오케스트라나 오페라 극장의 경제적 형편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티켓 수익을 위해 익숙하고 편안한 작품만을 연주하려는 퇴행적 모습보다는 분명 진일보한 것"이라면서도 "감동을 느끼지 못했을 때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면, 거꾸로 많은 감동을 받았을 때는 다음 콘서트 티켓도 미리 사야 하는 것 아닐까?"라고 반문합니다.

한국서울시향(예술감독 정명훈) 역시 올해부터 티켓 가격을 5000원과 1만원으로 대폭 낮추고 정기연주회의 일부 프로그램을 미리 들려주는 '희망 드림 콘서트'를 시작했습니다. 지난달 1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셰에라자드〉를 연주했던 첫 콘서트는 일찌감치 조기 매진을 이뤘지요.

취지는 좋지만 여기에도 한가지 골치 아픈 문제는 있습니다. 정기연주회와 프로그램이 겹칠 경우, 자칫 티켓 가격이 낮은 공연만 선호하는 '시장 왜곡'을 초래해서 제 살을 깎아 먹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역시 티켓 가격과 마케팅 기법과 고객이 받게 되는 감동 사이의 '함수 관계'는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복잡하면서도 까다롭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