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파르를 울려라, 통영에 '음악의 봄'이 왔다

  • 통영=김성현 기자

입력 : 2009.03.30 03:08

국제음악제 내달2일까지… '상주 연주자'제(制) 첫 도입

벚꽃이 꽃망울을 모두 터뜨리기 직전의 경남 통영 남망산 자락에 벽안(碧眼)의 외국인 지휘자가 찾아왔다. 2011년부터 통영국제음악제의 음악감독을 맡게 되는 독일 뮌헨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 알렉산더 리브라이히(Liebreich)였다. 리브라이히는 27~28일 통영 시민문화회관에서 뮌헨 체임버를 이끌고 모차르트와 하이든, 윤이상과 그의 일본인 제자였던 작곡가 토시오 호소카와 등 고전과 현대를 넘나드는 대담한 구성으로 연이틀 강행군을 펼쳤다.

독일 나치 수용소에서 숨을 거둔 작곡가 기데온 클라인(Klein·1919~1 945)의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파르티타〉에서는 아우슈비츠로 향하기 직전의 암울한 절망과 그 속에서 다시 피어나는 희망을 진지하게 교차시켰다. 곧이어 하이든의 교향곡 45번 '고별'에서는 바이올린 연주자 2명을 무대에 남겨두고 지휘자 먼저 총총 빠져나가는 4악장의 위트로 객석에 웃음을 불어넣었다. 오후 10시 연주회가 끝난 뒤에도 그의 사인을 받으려는 팬들의 행렬이 2층 계단까지 길게 늘어섰다.

리브라이히는 2012년까지 통영국제음악제의 상주악단인 '통영 페스티벌 오케스트라(TFO)'를 창단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지금까지는 통영국제음악제 앙상블(TIMF)이 주로 소(小)편성 관현악곡을 소화해왔지만, 앞으로는 이 앙상블에 뮌헨 체임버 등 세계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결합해서 오케스트라의 덩치를 키운다는 것이다. 이는 스위스의 유명 음악제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다분히 염두에 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올해 폐막작인 말러의 〈대지의 노래〉를 비롯해 지금까지 소편성을 위한 편곡 작품으로 대체해왔던 곡들도 원곡 그대로 연주할 수 있다.
통영국제음악제 기간 중 야외무대에서 시민과 아마추어 음악인들이 다양한 무대를 펼치는‘프린지 페스티벌’에서 통영관악합주단이 연주하고 있다. 프린지 페스티벌은 에 딘버러 국제페스티벌에 초청받지 못한 작은 공연단체들이 주변부(Fringe)에서 자생적으로 공연한 데서 유래했다./통영국제음악제 제공
올해 통영국제음악제는 다음 달 2일까지 본 공연만 17차례 열리고, 자유 참가 공연인 '프린지'에는 138개 팀이 참가한다. 또 축제 기간 내내 연주자가 머물면서 독주회·실내악·교향악단 협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상주연주자' 제도를 도입하면서 튼실한 안정감을 갖게 됐다. '1번 타자'가 된 피아니스트 최희연 교수(서울대)는 리스트·뒤티외·막스 레거 등 바흐(Bach)에 영감을 받은 후배 작곡가들의 작품으로 29일 독주회를 가지며 문을 열었다. 최 교수는 30일 실내악 연주회에 이어, 다음 달 1일에는 영국 악단인 노던 신포니아(지휘 토마스 제트마이어)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협연한다.

외국인 음악감독 영입과 상주연주자 도입으로 '통영의 봄'은 그 어느 때보다 활력이 넘치지만, 아직 풀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의 고향이라는 이점을 살려 '아시아 현대음악의 요람'이 되겠다는 야심 찬 포부와 지역 주민을 고려한 대중적 프로그램을 넣어야 한다는 현실적 고려 사이에서 뚜렷한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뮌헨 체임버와 노던 신포니아, 헝가리 집시 바이올리니스트 로비 라카토시 등 통영을 찾는 해외 유수 연주단체들이 대부분 서울에서의 연주회가 겹친다는 점도 여전히 고민거리다.

이용민 통영국제음악제 사무국장은 "음악감독과 상주연주자 영입을 통해 소프트웨어를 강화하고, 장기적으로는 전용음악당 건립으로 하드웨어를 보강해서 음악제를 한층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큰 목표"라고 말했다. 통영은 또 한번의 도약과 정체의 갈림길에 서 있다.
독일 지휘자 알렉산더 리브라이히가 27일 통영시민문화회관에서 뮌헨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통영국제음악제 개막 연주회를 가진 뒤 인사하고 있다. 리브라이히는 2011년 통영국제음악제 음악감독으로 취임한다./통영국제음악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