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건우, 샛별들의 수호천사로

  • 김성현 기자

입력 : 2009.03.19 03:46

유망 피아니스트 3명과 공연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평소 음악계에서 레슨 한번 받기 쉽지 않은 연주자로 통한다. 수많은 후배들이 그의 앞에서 연주해보기를 바라지만,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특별히 까다로운 편은 아닌데…. 아무래도 제 연주로 바쁘고 외국에 살다 보니 한국 연주자들을 만날 기회가 적어서 그렇겠죠." 백건우의 말투는 언제나 그렇듯 조용하면서도 담담하다.

그런 백건우가 이번엔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수호 천사'를 자청했다. 2004년 포르투 국제 피아노 콩쿠르 1위 입상자인 김태형(24), 2006년 리즈 콩쿠르 아시아 첫 우승자인 김선욱(21), 2007년 프랑스 롱티보 국제 콩쿠르 2위 김준희(19)와 함께 한 무대에 서는 것이다. 4대의 피아노와 8개의 손가락이 펼치는 '피아노의 향연'으로, 한국 피아노의 오늘과 미래를 점칠 수 있는 무대이기도 하다.

"지금 한국에선 젊고 유망한 음악가 세대가 대거 등장하고 있어요. 우리 세대가 먼저 이들을 인정하고, 그 재능을 꽃피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해요."
피아니스트 백건우(왼쪽에서 두 번째)가 한국의 대표적인 젊은 피아니스트들과 함께 한 무대에 선다. 왼쪽부터 김준희·김태형·김선욱. 음악계에서는‘서태지와 아이들’이나‘삼김(三金)’에 빗대‘백건우와 아이들’이나‘백건우와 삼김 시대’라고 부른다. /크레디아 제공
백건우는 세 후배가 콩쿠르에 참가하거나 연주 무대를 열 때마다 틈틈이 지켜보면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자칫 젊은 연주자들은 자기 자신만 내세우는 함정에 빠지기 쉬운데, 이들은 서로 아끼고 존중하면서 장점을 배우려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했다.

셋은 모두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이지만, 스승은 강충모(김태형) 김대진(김선욱) 임종필(김준희)로 서로 다르다. 백건우는 "태형이는 나이가 가장 많아선지 어른스럽고, 준희는 아무래도 어리니까 어리광도 잘 부리고 따뜻하고, 선욱이는 딱 그 중간"이라며 웃었다.

건반 위에서 남달리 유려하고 영롱한 음색을 선보이는 김태형은 "선 굵은 러시아 음악 등을 통해 폭넓은 음악세계를 모색"하려고 고심 중이다. 베토벤·브람스·슈만·슈베르트 같은 고전에 천착하는 김선욱은 "아직 진행형의 초기 단계이니 멀리 바라보고 싶다"고 한다. 김준희는 "라흐마니노프와 베토벤, 쇼팽과 브람스 등 언뜻 대조되는 것처럼 보이는 작곡가들을 묶어 연주하면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이번 연주를 위해 백건우는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을 4대의 피아노를 위해 편곡한 작품과 다리우스 미요의 4대의 피아노를 위한 〈파리〉 등의 악보를 일일이 찾았다. 그는 "출판사나 악보사에 부탁을 해도 찾기가 쉽지 않아, 친구들에게 빌려서 직접 복사를 하기도 했다. 그 과정도 배움이고 재미"라고 말했다.

백건우는 젊은 연주자에게 어떤 '비장의 조언'을 들려줄까. "언제나 같아요. 건반 앞에서든, 삶에서든 성실해야 한다는 거죠." 그의 목소리도 늘 변함이 없다.

▶백건우·김태형·김선욱·김준희 피아노 연주회, 5월 10·11일 서울 예술의전당, 13일 마산 3·15 아트센터, 14일 대구 학생문화센터, 15일 고양 아람누리, 1577-5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