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기자기한 동선과 박력 있는 음악이 희극성 높여

  • 김성현 기자

입력 : 2009.03.09 03:45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성악을 손으로 하는 건 아니다. 8 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모차르트)에 앞서 안내 방송이 나왔다. "수잔나 역의 소프라노 신영옥씨가 예기치 못한 부상으로 깁스를 하고 출연할 예정이니 많은 이해와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지난 6일 개막일 당시 피가로(바리톤 조르지오 카오두로)와 티격태격하는 4막 장면에서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골절되는 바람에, 긴급히 수술까지 받은 것이다.

하지만 피가로와 결혼을 앞둔 새 신부 역의 신영옥은 머리를 끌어 잡고 싸우는 2막부터 백작의 기습 키스에 발을 흔드는 3막까지 깁스를 하고서 '부상 열연'을 펼쳤다. 특유의 서정적 목소리로 뽑아내는 4막 아리아 〈빨리 와다오, 기쁨의 순간이여〉에 객석에서도 '응원'을 보탠 박수가 터졌다.
오페라《피가로의 결혼》에서 수잔나 역을 맡은 신영옥(오른쪽)과 백작 역의 바리톤 윤형./예술의전당 제공
이번 프로덕션은 영국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2006년 무대를 공수한 것으로 일찌감치 입소문을 탔다. 연출을 맡은 데이비드 맥비커(McVicar)는 베르디의 《리골레토》에서 집단 섹스의 설정으로 막을 열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살로메》는 유혈 낭자한 핏빛 잔혹극으로 그려낸 오페라의 '문제적 거장'이다. 하지만 이번 《피가로의 결혼》에서는 정작 자신의 장기인 폭력이나 성적 장면을 일절 등장시키지 않은 채, 점잖은 행보를 보였다.

그가 대신 강조한 건 무대 위의 아기자기한 동선(動線)이었다. 경쾌한 서곡이 울려 퍼지기 무섭게 막이 올라가면, 하인과 하녀들이 저택의 창문을 열고 바쁘게 빨랫감과 일감을 날랐다. 등장인물들이 엇갈린 사랑의 방정식 앞에서 어지럽게 오갈 때에도, 군중은 구경하고 간섭하고 훼방까지 놓으며 적극적으로 이야기에 개입했다. 세심한 공간 분할까지 곁들여 입체감을 보탰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이 오페라의 숨은 공신이었다. 이온 마린이 지휘한 코리안 심포니는 서곡부터 속도를 한껏 올리면서도 명징하고 분명한 선(線) 처리로 생동감과 박력을 더했다. 다소 거친 맛을 가미하면서도 안정감을 잃지 않은 악단의 호연(好演)에, 프랑스 혁명에 3년 앞서 초연됐던 이 풍자 코미디의 희극성도 한껏 살아났다.

백작(바리톤 윤형)과 피가로(바리톤 카오두로), 수잔나(신영옥)와 백작 부인(소프라노 새라 자크비악) 등 남녀 주인공의 음역(音域)이 서로 겹치기에 더 뚜렷하게 성격 대조를 시켰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3시간 내내 객석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희극의 순도는 높았다.

▶10·12·14일 오후 7시30분 예술의전당, (02)580-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