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도, 이후에도 오직 배우

  • scene PLAYBILL editor_김아형
  • scene PLAYBILL photographer_윤석원

입력 : 2009.03.04 18:20

뮤지컬 배우 전수경

전수경의 어릴적 사진

노란색 발레리나 원피스를 입고 한껏 멋을 부린 사진 속의 나는 흑백TV에서 나오는 주말의 영화를 손꼽아 기다리던 초등학생이었다. 소녀 시절 우상이었던 나탈리 우드가 주연한 '초원의 빛' '집시'를 필두로 당시의 블록버스터라 할 수 있는 뮤지컬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사운드 오브 뮤직' 등에 어린 마음을 빼앗기는 충분했다.

중학교 때 컬러TV가 집에 들어왔고 형형색색의 색을 입은 스타들은 한 층 커보였다. 특히 그래미 시상식에서 오렌지 색 시폰 드레스를 입은 아이린 카라가 '페임'의 노래를 부르던 모습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TV드라마를 보며 또래 아역배우들을 부러워했고 미스 유니버스대회며 아카데미 시상식 등을 보면서는 나도 저런 상을 받을 만큼 유명해지고 싶었던 학창 시절. 연극반이 없어서 영어 연극을 할 수 있는 영어 회화반에 들어가 이강백 선생님의 '결혼'을 영어로 공연하는 것으로 연기에 대한 꿈을 채우던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며 배우가 되겠다는 결심은 확고해졌다.

염원하던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해서는 그저 연기가 하고 싶어 다짜고짜KBS·MBC의 탤런트 공채시험에 응시했다 고배의 쓴잔을 마셔야 했다. 탤런트가 내 길이 아님을 인정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흥미진진한 학교생활이 펼쳐졌다. 동갑내기인 유오성·박미선과 어울려 '아낙2' 같은 단역도 재미있어하며 연극 작업에 푹 빠져 지내던 그 몇 년은 연기의 기본을 배운 소중한 시기였다.

그런데 기회는 뜻하지 않는 곳에서 시작되었다. 1988년, 친하게 지내던 작곡가와 우연히 의기투합해 대학가요제에 출전했다가 '말해'라는 곡으로 동상을 받게 된 것이다. 애초에 가수를 꿈꾼 적은 없엇으나 방송이며 음반 제의가 밀려왔다. 하지만 음반 녹음은 미뤄지고 시기는 불투명한 기다림에 지쳐가던 내게 대학 은사인 최형인 교수님께서 "너는 가수가 아니라 배우가 될 재목"이라며 한양대학교 30주년 기념 공연인 '사천의 선인'을 제안하셨다. 친정 같은 학교에서 다시 연기를 하는 동안 있어야 할 자리를 찾은 듯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그 무대를 통해 '나는 평생 무대를 떠나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을 지울 수 없었다.

뮤지컬이라고는 한양대에서 최초로 올렸던 '가스펠'에 참여한 게 다였던 내게 1990년 뮤지컬 데뷔작인 '캣츠'는 운명처럼 다가왔다. 많은 춤이 요구되는지도 모른 채 오디션에 합격해 연습 첫날부터 눈물 마를 날이 없었지만 함께하는 선배들의 격려로 하루는 이틀이 되고 한 달이 되어 무사히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혹독한 트레이닝이었지만 첫 작품은 내게 몸을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깨주었고 몇 년치 수업을 한꺼번에 한 듯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다음 작품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에 주인공 마리아로 뽑혔을 때도 내심 섹시하고 춤을 잘 추는 아니타 역을 바랬던 건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대신 아니타 역의 경미언니를 만나 둘도 없는 사이가 되었고 우리는 '맘마미아!' '메노포즈'에 이르기까지 여러 작품에서 콤비로 호흡을 맞추었다.

뮤지컬 배우 전수경
1990년대 중반까지 '사운드 오브 뮤직' '코러스라인' '넌센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그리스' '7인의 신부' 등 쉴 틈 없이 무대에 올랐던 나는 드디어 1998년 '더 라이프'로 한국뮤지컬대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게 되었다. 그렇게 뮤지컬 무대에는 '전수경만이' 할 수 있는 캐릭터들로 확고부동한 위치가 생겼지만 마음 한편에 뿌리내린 영화배우에 대한 꿈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 출연의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고 종종 단역으로 참여를 해도 이방인 같은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영화 안에 나를 푹 담글 수 있을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리자며 마음을 다잡기를 수차례. 2007년 '최강 로맨스'를 시작으로 오랜 기다림의 물꼬가 트였고 영화는 물론 TV드라마 '떼루아'의 출연까지 이어졌다. 촬영 스케줄이 들쑥날쑥한 탓에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지만 올해 초등학생이 되는 쌍둥이 딸 시온이, 지온이의 잠자리만은 늘 직접 챙기기를 고집한다.

어려서부터 공연장에 많이 데리고 다녀 배우 엄마를 잘 이해해주는 두 딸은 나와 띠 동갑. 늦은 나이인 서른여섯에 얻은 보물이다. 딸 가진 엄마의 마음이야 매 한가지겠지만 딸 가진 엄마 셋이 뭉친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그래서 더 특별한 도전이 아닐까.

경미언니가 출연했던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2001년 초연 때만 해도 이 작품은 공연 자체가 논란이었고 쇼킹한 사건이었지만 사회자 역이 참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맘마미아!'의 지방 공연 중 경미언니를 통해 아줌마 트로이카의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제안 받고는 곧장 '예스'라고 답했다. 드라마 촬영 탓에 경미 언니와 정원이에 비하면 연습할 시간이 턱없이 모자라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출연을 감행한 건 우리 셋이 함께 무대에 섰을 때야 이번 버전이 '제 맛'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연습 동안 나 스스로는 여성에 관해, 터부시해온 성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서로 숱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로 공감하고 풀어 나갔다. 그동안 서로가 더 각별해지고 의지가 됐음은 물론이다. 여성의 문제는 혼자 시위를 벌인다고 해결이 될 일이 아니다. 여성운동가는 아니지만 여성의 이야기를 예술적으로 문화적으로 포장해서 대변해줄 수 있는 여배우로서의 사명감을 다하고 싶을 뿐. 이 무대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배우라는 직업을 꿈꿔 다행이라는 생각을 수없이 되내이며 내일도 내년에도 십 년 이십 년 후에도 배우 전수경이기를 바래본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