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2.26 06:04
교향곡에 위트 있는 표현
관객 정신들게 할땐 '놀람'
단원들 휴가보낼 땐 '고별'

하이든(Haydn·1732~1809·사진)의 교향곡 94번 2악장은 이처럼 단순한 선율을 느리고 여리게 연주하면서 시작합니다. 다시 한번 주제를 반복할 때는 더욱 여리기 때문에 자칫 긴장도 풀어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반복이 끝날 때쯤, 돌연 팀파니의 거센 타격과 함께 일제히 오케스트라가 강하게 연주하며 표정을 싹 바꿉니다. 정신이 번쩍 드는 이 대목 때문에 교향곡의 별명도 〈놀람〉입니다.
올해 서거 200주기를 맞은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은 유머의 달인이기도 합니다. 정식 번호가 붙어 있는 교향곡만 104곡에 이를 정도로, 하이든은 평생 이 장르에 심혈을 기울여 고전파 음악의 완성에 기여합니다. 이들 교향곡 곳곳에는 하이든 특유의 위트가 숨어 있습니다.
교향곡 45번 〈고별〉의 마지막 4악장이 대표적입니다. 에스테르하지 가(家)의 궁정 악장으로 임명된 하이든은 여름 내내 후작의 궁에서 지내며 곡을 쓰고 단원들과 연주를 했습니다. 1772년에는 통상 후작이 머무는 기간보다 2개월가량 체류가 길어진 모양입니다.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풍악을 울려야 하는 단원들의 불만도 거셌겠지요.
보통 힘차고 빠르게 마무리하는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 대신, 하이든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꺼냅니다. 빠르게 4악장을 시작하다가, 중간쯤 갑자기 박자를 느리게 변화시키는 것이지요.
이때부터 오보에와 호른부터 연주를 마친 단원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합니다. 이윽고 현악 파트만 남았다가 더블 베이스와 첼로와 비올라마저 차례로 떠나면, 두 대의 바이올린만이 처량하게 무대 위에 남아서 연주합니다.
'휴가 좀 보내달라'는 청원을 이처럼 운치 있게 표현한 곡이 또 있을까요. 그래서 곡의 별명도 〈고별〉입니다. 이심전심(以心傳心) 염화미소(拈華微笑)였는지, 후작도 단원들의 맘을 짐작하고 바로 짐을 쌌다는 뒷이야기도 전합니다.
실제 4년 전 노르웨이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내한 연주 때는 단원들이 보면대(譜面臺) 곁의 조명등을 끄고 나가며 명암(明暗)의 대조로 여운을 더했고, 올 초 빈 필하모닉의 신년 음악회에서는 단원들이 퇴장하자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이 당황하는 시늉으로 객석에 웃음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베를린 필의 지휘자 사이먼 래틀은 하이든 교향곡 90번 4악장의 실황 도중, 끝날 듯 말듯 알쏭달쏭한 연주로 베를린 관객들이 두 차례나 실수로 손뼉을 치게끔 유도합니다. 능청스러운 지휘자의 속임수에 관객이 딱 걸려든 셈이지만, 래틀은 겸손하게 "유머는 하이든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이든의 교향곡에는 100번 〈군대〉, 101번 〈시계〉, 103번 〈큰북 연타〉 등 관현악의 다채로운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도 많아 입문용으로도 적격입니다.
교과서에서 하이든은 모차르트·베토벤과 함께 흔히 고전파 3총사로 분류됩니다. 하지만 도식적으로 음악을 대하다 보면, 자칫 앙상한 원칙만 남기 쉽습니다. 시험 치고 나면 곧바로 잊어버리는 암기용 구절은 잠시 잊고, 유쾌하기 그지없는 하이든의 유머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