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봐, 일상은 위대한 거야

  • 손정미 기자

입력 : 2009.02.24 03:06

● 작가 히데아키, 크레이그-마틴 전시회
생활용품·만화 등 친숙한 소재에 담긴 새로운 의미 추구

마이클 크레이그-마틴의〈전구〉. 크레이그-마틴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용품 을 새롭게 인식되도록 했다. /PKM 트리니티 갤러리 제공
26일 동시에 개막되는 가와시마 히데아키(川島秀明)의 '방황'전(국제갤러리·02-735-8449·3월29일까지)과 '마이클 크레이그-마틴(Michael Craig-Martin)'전(PKM 트리니티 갤러리·02-515-9496·3월31일까지)은 몇 가지 점에서 서로 만나고 있다.

가와시마와 크레이그-마틴은 모두 세계 미술계를 휩쓸고 있는 팝 아트의 힘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가와시마는 "팝 아트는 사람들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내세워서 인기를 얻고 있는 것 같다"면서 "만화라는 매체는 저급한 문화로 분류됐었는데 이제는 고급문화의 영역을 공격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크레이그-마틴은 "팝 아트는 대중문화의 친숙한 이미지를 사용함으로써 엘리트적이고 이해하기 힘들었던 현대미술을 보다 접근하기 쉽게 만들었다"면서 "팝 아트로 인해 미술 관람객층이 훨씬 두꺼워진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가와시마 히데아키의 ≪방황≫전(展)에 나온〈스플래쉬〉. 만화에 등장할 것 같은 캐릭 터를 통해 현대인의 불안을 나타냈다. /국제갤러리 제공
두 사람 모두 '팝 아트'라는 범주에 놓이는 것을 거부하지만 만화 캐릭터(가와시마)나 광고(크레이그-마틴) 같은 익숙한 이미지를 캔버스 위에 들여놓았다는 점에서 팝 아트적인 요소가 강하다. 두 사람의 작품은 처음엔 자주 봐왔던 이미지를 통해 쉽게 느끼지만,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함으로써 의미를 재해석하게 된다.

크레이그-마틴은 영국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미술을 가르쳤으며 이때 배운 대미언 허스트는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했다. 크레이그-마틴은 영국의 젊은 예술가(Young British Artists) 그룹에 영향을 끼친 대부(代父)로 불리고 있다. 허스트는 요즘도 새 작품을 완성한 뒤에는 스승에게 와서 봐줄 것을 요청하기도 한다. 가와시마는 미술학교를 졸업한 후 한때 붓을 꺾고 승려가 됐다. 그러나 일본 팝 아트의 대표적인 작가인 나라 요시토모를 스승으로 만나 다시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크레이그-마틴은 1970년대 유리 선반 위에 올려놓은 물잔을 가리켜 '참나무'라고 이름 붙인 영국의 대표적인 개념미술 작가였다. 개념미술은 아이디어나 작품 과정을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현대미술의 경향이다. 그러나 크레이그-마틴은 1990년대 이후 뚜렷한 윤곽선과 화려한 색상으로 일상용품을 그리는 평면화에 주력해왔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듯 구두·전구·의자 등 일상적인 사물을 광고 일러스트처럼 등장시켜 팝 아트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 크레이그-마틴은 "평소 익숙해져 있는 사물을 클로즈업시킴으로써 위대함을 다시 발견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가와시마의 작품에는 인상적인 눈매와 터질 듯한 입술을 가진 여인이 등장한다. 언뜻 보면 일본 만화에서 본 듯한 모습이다. 그러나 가와시마는 다른 일본 팝 아트 작가와 달리 만화 캐릭터에서 모티브를 따오지 않고 자신이 창조해낸 캐릭터를 그린다. 가와시마는 "작품을 할 때 밑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면서 "순간순간 떠오르는 이미지를 따라 그리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름답지만 어딘지 부유하는 듯한 모습이 현대인의 불안한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