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뒷받침되지 않는 선진국은 비극"

  • 손정미 기자

입력 : 2009.02.23 02:51

국립현대미술관장 임명된 배순훈 前 장관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임명된 배순훈씨는“컬렉션과 기획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기금을 모금하고 미술로 가치를 창출하는 데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배순훈(裵洵勳)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국립현대미술관 신임 관장에 임명된 것을 두고 미술계에서는 CEO 출신을 발탁한 파격적인 인사라고 말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장관까지 지낸 사람이 정부 부처 실장급 감투를 썼다는 것을 화제로 삼고 있다. 이에 대해 배 신임 관장은 22일 "기업 최고경영자와 장관까지 지내봤지만 이제 나라를 위해 마지막 봉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관장에 응모했다"고 밝혔다.

배 신임 관장은 "우리도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머지않아 선진국 대열에 오르겠지만 문화가 뒷받침되지 않는 선진국은 비극이 될 수 있다"며 문화 수준을 세계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미술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고 말했다. "대우전자 사장 시절 투자 지역이었던 스페인 빌바오에 구겐하임 미술관이 건립되는 과정을 보면서 미술관의 중요성을 피부로 느꼈다"는 배 신임 관장은 그 이후 미술이 이뤄낼 수 있는 가치 창출에 관심을 가져왔다고 밝혔다. 그는 "미술을 비롯한 예술을 통해 창의력을 키워나간다면 2030년쯤이면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다"면서 "하루빨리 창의력 산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 신임 관장은 비(非)미술계 인사가 국립현대미술관을 제대로 운영하겠느냐는 일부의 지적을 의식한 듯 "작품 컬렉션과 전시 기획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미술관이 세계적인 규모로 발전하려면 자금 확보가 중요하다"며 "컬렉션과 기획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기금 모금 같은 분야에 몸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기업 CEO들을 설득해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배 신임 관장은 주말이면 화랑가를 즐겨 찾는 미술애호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아내(서양화가 신수희씨)와 아들(건축가 겸 설치미술가 배정완씨) 덕분에 미술에 문외한은 아니다"고 말했다.
배 신임 관장은 대우전자 사장 시절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CF 광고에 출연해 '탱크주의'를 성공시킨 데서 알 수 있듯 창의적인 발상이 많은 사람이다. 그는 "그동안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 작가들을 발굴해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할 생각"이라고 밝히고 "디자인과 건축에 대한 교육과 지원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컬렉션 예산이 적지만 현대미술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도록 좋은 작품을 구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해외 유명작가들이 한국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하는 레지던스(residence) 프로그램을 활성화해 국내 작가의 시야를 넓히고 한국 현대미술을 세계에 알리는 데도 힘쓸 생각이다.

배 신임 관장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서울 종로구 소격동 옛 기무사 터에 세워지는 것과 관련해서는 "노먼 포스터나 장 누벨 같은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참여하게 해 세계인의 관심을 모으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