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2.18 02:42
레서·백혜선 베토벤 첼로소나타 연주회
이날 무대의 주인공은 첼리스트 로렌스 레서(Lesser)와 피아니스트 백혜선이었다. 백혜선이 미국 보스턴의 음악 명문 뉴 잉글랜드 컨서바토리에 입학한 1983년 당시 레서가 이 학교 총장에 취임했기 때문에 '사제(師弟) 이중주'이기도 했다. 지난해 고희(古稀)를 맞은 레서는 "이 연주회를 위해 미국에서 긴 여행을 떠나왔지만 베토벤이 평생 작곡했던 음악 여행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작곡가는 삶의 후반에 청력을 잃고 힘든 시절을 보내며 간혹 '미쳤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다행히 오늘날에는 이 걸작을 듣기 위해 미쳐야 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노(老)첼리스트가 영어로 따뜻하게 해설하면 제자 백혜선이 이어서 통역하는 풍경은 강의실만 같았다.

첫곡으로 연주한 〈헨델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은 피아노가 먼저 변주를 시작하면 첼로가 따라서 들어오고, 단조로 바뀌면서 주도권이 첼로로 서서히 옮겨간다. 피아노가 반주에 그치지 않고, 첼로와 동등한 자격에서 나누는 이중주라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첫 곡부터 레서가 모나지 않고 품격 있게 다가가면 백혜선은 기민하게 호흡을 맞춰나갔다.
이어진 첼로 소나타 1번 2악장에서는 우아한 스텝을 밟듯 첼로가 리듬감을 만들어갔고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에서는 피아노가 섬세한 강약 조절을 통해 갖가지 다채로운 표정을 불어넣었다. 연주회장의 난방기 온도를 높이는 바람에 급격히 건조해져서 두 연주자의 잔기침이 이어지며 간혹 고비를 맞았고 소나타 4번에서는 긴장감을 조금 더 탄탄하게 죄어 갔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하지만 "레서는 낭만적으로 한껏 감성을 터뜨리기보다는 이지적으로 고전 작품의 결을 살리는 연주자"라는 첼리스트 정명화의 평처럼 둘의 음악 대화는 따뜻하기만 했다. 레서는 "간혹 가장 좋아하는 베토벤 첼로 소나타가 무엇인지 질문을 받지만 내가 연주하고 있는 그 순간의 곡"이라고 말했다.
4시간여의 연주가 끝난 뒤 따뜻한 기립박수를 보낸 청중도 듣고 있는 그 순간의 곡이 가장 울림 깊은 건 같았다. 이들은 서울에서 이틀에 걸쳐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을 다시 완주(完奏)한다.
▶레서·백혜선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 연주회, 19~20일 금호아트홀, (02) 6303-7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