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도 자막 보며 관람?

  • 박돈규 기자

입력 : 2009.02.16 05:54 | 수정 : 2009.02.16 07:53

26일 개막 '돈키호테'서 첫 도입 논란
"초보 관객 위해 동작 의미 설명"
"춤 자체가 언어… 집중력 떨어뜨려"

사진=유니버설발레단 제공
"키트리를 둘시네아로 착각한 돈키호테가 앞을 막아선다.

바질은 어이없어 한다.

키트리: 왜 그래?

바질: 저 사람은 정신 나간 노인이야!"

희곡의 한 대목이 아니다. 유니버설발레단(UBC)이 26일부터 서울 유니버설아트센터에 올리는 발레 '돈키호테'에 이런 자막(字幕)이 뜬다. 공연 중간중간 장면이나 몸짓을 설명하는 자막들이 사각 무대틀의 상단에 찍히는 것이다. UBC는 "초보 관객을 위해 발레 마임(mime·무언극) 동작의 의미 등을 간단한 자막에 담기로 했다"면서 "4월 17~26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는 '라 바야데르'에서도 실시간 자막을 쓸 것"이라고 밝혔다.

발레는 음악과 춤, 마임으로 뜻을 전달한다. 마임의 경우 두 손을 모아 왼쪽 심장에 대면 '사랑한다'이고, 오른손으로 왼손의 반지를 가리키면 '결혼하자',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하고 양손으로 ×자를 만들면 '싫어요'라는 뜻이다.

'발레 자막'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클래식 발레에 자막을 도입한 사례는 해외에도 없다. UBC 관계자는 "지난해 '지젤' 공연에서 시험 삼아 자막을 써봤는데 관객 반응이 좋았다. 더 많은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시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발레 자막은 '과잉 친절' 혹은 '불친절'이라는 시각도 있다. 공연칼럼니스트 이수진씨는 "무용은 그 독특한 언어를 습득해가면서 재미를 느끼는 장르인데 자막으로 집중이 흐트러지면 마니아 관객은 거꾸로 소외당할 수도 있다"고 했다. 무용평론가 진옥섭씨는 "춤은 그 자체로 언어"라며 "자막이 춤의 호흡과 함께 흘러가지 않으면 발레의 아우라(기운)를 잃을 수도 있다"고 했다. 한 발레단 관계자는 "발레 관객의 수준을 그렇게 낮게 잡을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UBC의 '돈키호테'는 선술집 딸 키트리와 이발사 바질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희극 발레다. 공연 중 자막은 50번쯤 등장한다. 초보 관객이라도 누가 주인공이고 지금 어떤 상황이며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따라잡을 수 있다. 국립발레단 최태지 단장은 "더 알고 싶어하는 관객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특히 창작 발레는 자막이 필요한 측면이 있다"면서 "UBC 자막에 대한 반응이 좋다면 국립발레단도 자막 사용을 검토해볼 것"이라고 했다.

발레 자막은 최근 유행하는 '해설 공연'의 확대판이다. 국립발레단의 '해설이 있는 발레'가 히트한 데 이어 UBC는 '브런치 발레'로 관객의 저변을 넓히고 있다. UBC 문훈숙 단장은 올해 '돈키호테' '라 바야데르' '오네긴' 공연 30분 전 관객에게 작품의 감상 포인트를 설명해줄 예정이다. 한 평론가는 "자막도 연출의 일부로, 타이밍과 형식 등이 정교하게 통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6일부터 3월 1일까지 유니버설아트센터. 황혜민 강예나 이현준 황재원 등이 출연한다.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