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9 그들의 이야기 5] 뮤지컬 배우 변신 조민아 "'쇼하지 말라' 소리도 들었지만…"

  • 박시영 기자

입력 : 2009.02.05 15:08 | 수정 : 2009.02.05 20:23

“'쇼하지 말라'는 말도 들었지만 난 될 때까지 무조건 도전한다”
쥬얼리 꼬리표를 때고 뮤지컬 배우로 변신한 조민아(25)

뮤지컬 '렌트'의 조민아. /정유미 인턴기자(고려대 사회학과 4년)

조민아(25)는 4편의 작품에 출연한 뮤지컬 배우다. 하지만 대중들은 그녀를 인기 여성 댄스그룹 ‘쥬얼리’의 멤버로 기억한다. 지난해 상반기를 뜨겁게 달군 히트곡 ‘원 모어 타임’이 나왔을 땐 조민아는 쥬얼리가 아니었다. 그녀는 점점 대중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가고 있다.


하지만 대중이 아닌 뮤지컬 관객들이라면 이야기가 확 달라진다. 그는 ‘렌트’라는 대형 라이센스 뮤지컬의 ‘주연’ 배우다.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에서 모티브를 딴 ‘렌트’(~3월 8일 한전아트센터)는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에이즈와 마약에 찌든 가난한 예술가들의 꿈과 열정, 우정과 사랑을 그린 인기 뮤지컬이다.


지난 달 23일 오후 서울 서초동의 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댄스 가수라는 꼬리표를 떼고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며 겪었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다.

-공연은 어떤가?
“처음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지만 잘 되고 있다. 지금 거의 객석을 다 채워서 하고 있다. 온라인 티켓판매 순위에서도 10위권 안에 들고 있다. 배우들끼리 끈끈함이 많이 느껴지고 톱니바퀴가 맞춰져 가고 있다.”


-렌트는 대형 뮤지컬이다. 뮤지컬 배우로 자리를 굳건히 할 기회를 잡은 셈인데
“오디션에 응모할 때 사실 큰 기대를 못했는데 합격 통보를 받고 나니 날아갈 듯 기뻤다.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이었다. 공연을 보지 않은 분들은 가수 인지도로 따냈다고 생각 할 수도 있지만 절대 아니다.”


뮤지컬 관계자에 따르면 그녀의 오디션 응모 번호는 3번이다. 오디션 당일 제일 먼저 도착해 연습을 한 사람도 조민아다. 그녀가 얼마나 이 뮤지컬의 주인공(미미) 역할에 욕심이 많았는지 말해준다. 미미는 에이즈 환자이자 마약에 중독된 댄서다.


-원래 그렇게 적극적인가.
“댄스가수였던 내가 이 자리까지 온 건 무조건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뮤지컬에 맞는) 발성도 못했다. 선배들로부터 따가운 말도 들었다. ‘쇼’하지 말라는 말까지 들었다. 하지만 난 안되면 될 때까지 한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처음 가수 활동할 때 악보 볼 줄도 몰랐다. 연예인들은 자존심도 세고 기가 세다 보니까 먼저 못한다고 말 못한다. 하지만 나는 모른다고 말한다. 그래야 배울 수 있으니까.”


-목소리도 가수 때와 확연히 달라졌다.
“하루에 노래 연습만 13~14시간을 했다. 화장실, 복도에서 에코를 이용해 대사 연습도 했다. 그랬더니 목소리가 변했다. 쥬얼리 조민아는 계속 가식적으로 말했지만 지금은 톤이 굵어졌다. 지금은 가수 때보다 더 많이 노래를 해도 목에 무리가 안 간다. 내 목에 맞는 목소리와 발성을 찾았다.”


조민아는 오디션에서 주인공으로 뽑힌 뒤 지금껏 미미로 살고 있다고 했다. 에이즈에 걸린 마약중독자 캐릭터인 만큼 적응하는데 애를 먹기도 했다고 한다.


-역할을 준비하는 과정은 어땠나.
“역할에 집중하면서 밤이 되면 다음날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 괴로웠다. 무서운 꿈도 꿨다. 마치 병에 걸린 것처럼 아팠다. 관객들의 공감대를 불러 일으키려면 미미를 정확히 표현해야 했다. 병원을 찾아가 (에이즈)환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인터넷을 통해 환자들의 특성도 찾아 보며 공부도 했다.”

뮤지컬 '렌트'에서 미미역을 맡은 조민아(오른쪽에서 세번째)가 출연 배우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신시뮤지컬컴퍼니 제공

-역할에 대한 관객들의 평가는 어떤 것 같나
“ 공연 도중 ‘out tonight’ 을 부를 때 잘 모르는 관객들은 그것을 경쾌한 춤이라고 생각한다. ‘댄스가수 출신이 춤이 그게 뭐냐’고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춤이 아니다. 마약을 한 뒤 현실이 붕 떠 보이고 술을 많이 마셨을 때의 땅이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다. 처음엔 그런 평가가 싫어서 감독님한테 ‘저 봉춤이라도 출까요’ 라고 말한 적도 있다(웃음).”


-어찌 보면 이번 작품이 뮤지컬 배우로서 평가 받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맞다. 내 휴대전화 화면에는 ‘정신 차려. 추락하기 전에’라고 적혀 있다. 옷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옷걸이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가수는 앨범이 망해도 본인이 책임지면 된다. 배우는 다르다. 나 하나 때문에 작품이 살수도 망할 수도 있다.”


-뮤지컬 배우로 몇 점 정도 받을 수 있을 것 같나?
“평가는 관객의 몫이다. 숫자로 매기는 점수보다 그냥 진실함으로 최선을 다해 표현하고 싶다. 음반도 내고 방송도 하고 CF도 찍어봤지만 노래와 연기, 춤을 모두 할 수 있는 뮤지컬 배우로 살고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


인터뷰를 마친 뒤 렌트를 관람했다. 무대에 선 조민아의 모습은 무척 당당했다. 연기는 자연스러웠고 성량과 발성법도 좋아진 탓에 노래 역시 무난히 소화해냈다. 적어도 지금까지 25살 조민아의 도전은 성공적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