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ABC] 오바마 취임식장 '립싱크 축하연주' 논란

  • 김성현 기자

입력 : 2009.02.04 03:13

정상급 음악가들 대거 참석
녹음한 음원 틀고 연주 흉내만
야외 대형행사 불가피한 측면도

지난달 20일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식에는 소아마비를 딛고 정상급 바이올리니스트가 된 이츠하크 펄먼(Perlman), 첼리스트 요요 마,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오케스트라의 클라리넷 수석인 앤서니 맥길(McGill), 피아니스트 가브리엘라 몬테로(Montero)가 축하 연주를 위해 나란히 무대에 올랐습니다. 유대인(펄먼), 동양인(요요 마), 흑인(맥길)과 히스패닉(몬테로) 등 인종 간 화합을 상징하는 실내악 편성으로도 화제를 모았지요. 영화 《스타워즈》와 《이티(E.T.)》의 작곡가로 유명한 존 윌리엄스(Williams)가 취임식을 위해 〈에어 앤 심플 기프츠(Air and Simple Gifts)〉를 만들었고, 미 대통령 취임식에서 연주된 첫 번째 클래식 곡이라는 영광도 안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연주 뒤에는 뒷말만 무성합니다. 이들이 실연(實演)이 아니라 이틀 전에 미리 녹음한 음원(音源)을 틀고서 연주 흉내만 냈다는 비판이었지요. 요요 마와 펄먼은 "겨울 추위 때문에 악기 조율이나 연주에 문제가 생길 위험이 컸기 때문이었다. 숨길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에 나섰습니다.
오바마 미 대통령 취임식에서 축하 연주를 하는 이츠하크 펄먼(바이올린), 요요 마(첼로), 앤서니 맥길 (클라리넷₩왼쪽부터). 그러나 이들의 연주는 사전에 녹음한 것으로 밝혀져‘립 싱크’논쟁이 일었다. 로이터

취임식에서 이른바 '립싱크' 음악을 연주한 게 미국만은 아닙니다.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당시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정명훈의 지휘로 서울시향과 연합합창단이 연주한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 가운데 '환희의 송가' 대목 역시 미리 녹음해놓은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보수적인 음악 팬이라면 '전시용 행사'나 '주크박스(jukebox) 음악'이라며 눈살을 찌푸릴지 모릅니다. 하지만 수만 명의 인파가 참여하는 대형 야외행사의 속성상 실내 무대와 같은 정교한 연주는 힘든 측면이 있습니다. 취임식 당시 영하를 넘나드는 추위와 강풍, 조절하기 쉽지 않은 음향 문제를 감안하면 차라리 녹음으로 가는 편이 효과적일 수도 있지요. 지난해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당시 피아니스트 랑랑의 축하 연주가 사전(事前) 녹음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확성 장치가 없던 시절, 2000~3000명의 청중 앞에서 실연으로 오페라나 관현악을 연주했던 클래식 음악의 시대 환경은 이미 변하고 있습니다. 마치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다(Video Killed the Radio Star)〉는 버글스의 히트곡 제목처럼, 취임식 녹음 에피소드는 아날로그 시대의 음악이 디지털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변모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재미난 사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