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9.01.19 03:23
5월 다시 문 여는 명동예술극장 구자흥 극장장
1960~1970년대 명동극장에서는 댕댕댕 징이 울었다. 연극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다. 배우도 관객도 가슴이 뛰었다. 차범석의 《산불》(1962), 장민호 주연의 《파우스트》(1966)가 여기서 초연됐고 김동원·백성희·이순재·최불암·김혜자·추송웅도 '명동'의 배우들이었다. 그 시절 명동은 연극의 중심이었다. 1973년 남산에 국립극장이 생기면서 없어진 이 공연장이 오는 5월 명동예술극장으로 복원된다. 개관을 100여일 앞두고 있는 구자흥(64) 명동예술극장장을 만났다.
명동의 붐비는 인파 속에 서 있는 구자흥 극장장의 입에서 흰 김이 뿜어져 나왔다. "하루 유동인구가 100만 명이 넘는다네요. 희망적이죠? (웃음) 극장 앞에 노천 카페를 낼 겁니다. 객석 색깔도 핑크(분홍색)로 했습니다."
막바지 공사 현장을 보는 극장장의 표정은 상기돼 있었다. 1934년 일본 건축가가 지었다는 바로크 양식의 우아한 외벽은 그대로다. 내부공사를 해 지하 2층~지상 5층 건물이 됐고 2~4층에 중극장(552석)을 품고 있다. 구 극장장은 "지난해가 한국연극 100주년이었다면 올해는 새로운 100년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명동의 붐비는 인파 속에 서 있는 구자흥 극장장의 입에서 흰 김이 뿜어져 나왔다. "하루 유동인구가 100만 명이 넘는다네요. 희망적이죠? (웃음) 극장 앞에 노천 카페를 낼 겁니다. 객석 색깔도 핑크(분홍색)로 했습니다."
막바지 공사 현장을 보는 극장장의 표정은 상기돼 있었다. 1934년 일본 건축가가 지었다는 바로크 양식의 우아한 외벽은 그대로다. 내부공사를 해 지하 2층~지상 5층 건물이 됐고 2~4층에 중극장(552석)을 품고 있다. 구 극장장은 "지난해가 한국연극 100주년이었다면 올해는 새로운 100년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교생이던 1960년대 초부터 '명동극장 단골'이었다. 백성희의 《베니스의 상인》, 김을동이 데뷔한 《원숭이 재판》, 이낙훈의 《리어왕》 등을 봤다. "삶에 대한 연극적 통찰에 재미를 붙였고 자연스럽게 인생의 항로를 연극으로 정했다"고 했다. 서울대에 입학하자마자 연극반 활동을 한 그는 1966~67년 무교동의 전설적인 음악다방 '쎄시봉'에서 DJ를 맡았다. 조영남, 윤형주가 노래할 때였다. 구자흥은 "한 학기 등록금이 7500원할 때인데 한 달 일하면 6000원을 받았다. 내가 입대하고 이상벽(아나운서)이 쎄시봉 DJ가 됐다"며 웃었다.
구 극장장은 1970년대 극단 실험극장, 민중극장의 기획자를 거쳤고 의정부예술의전당 관장을 지냈다. 의정부음악극축제, 천상병예술제가 그의 성공작이다. 10명을 뽑는 명동예술극장 직원 채용에는 무려 800여 명이 몰렸다. '명동+구자흥'의 효과다. 지난해 임명된 문화부 기관장들 중 잡음이 가장 없었던 구 극장장은 "관객이 100m씩 줄을 서던 명동 시절의 향수를 되살리면서 좋은 레퍼토리로 극장의 크레디트(신뢰)를 높일 것"이라고 했다.
6월 1일 개막할 공식 개관작은 셰익스피어의 《햄릿》, 오영진의 《맹진사댁 경사》,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 체호프 작품 중 한 편으로 압축됐다. 구 극장장은 "개관작이 아니더라도 명동예술극장에서 올려야 할 교과서 같은 명품들"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