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ABC] 베를린 명문 오케스트라들 '너무 많아서 탈'

  • 김성현 기자

입력 : 2009.01.09 03:20

분단기 東西양측 악단 창단 경쟁
통일 이후 불황때 구조조정 공포

보통 유럽의 오랜 대도시에는 명문 오케스트라가 서너개 정도 존재합니다. 물론 역사적 배경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도시 이름을 딴 필하모닉이나 심포니 오케스트라, 오페라 극장 관현악단과 방송 교향악단 등이지요. 독일 뮌헨이라면 뮌헨 필하모닉과 바이에른 오페라 극장,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을 떠올리면 좋을 것입니다.

통상적인 오케스트라 숫자의 두 배가 넘는 교향악단들이 치열한 자체 생존 경쟁을 벌이는 도시가 바로 독일의 수도 베를린입니다. 베를린 필하모닉(지휘자 사이먼 래틀)을 비롯해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로타 차그로제크), 도이체 심포니 오케스트라 베를린(잉고 메츠마허),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마렉 야노프스키) 등이 있으며 오페라 극장도 세 곳이나 됩니다.

시(市)정부의 자금 사정이 조금이라도 여의치 않으면 오케스트라 지원금 삭감 규모를 놓고 격렬한 난상토론이 벌어지는 곳이 베를린입니다. 이 도시의 청중은 유독 오케스트라를 사랑하기 때문일까요. 아마 그럴지도 모릅니다.
베를린의 교향악단 지형도가 복잡한 배경에는 독일 분단이라는 역사적 그늘이 놓여있습니다. 동서독 분단으로 베를린이 양분되면서 과거 오페라 극장과 오케스트라도 둘로 갈라졌던 것이지요. 현재 베를린 필은 서독, 명문 오페라 극장인 베를린 슈타츠오퍼(다니엘 바렌보임)는 동독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체제 경쟁처럼 오페라 극장과 교향악단 경쟁도 자연스럽게 일어났습니다. 서독에는 새로운 오페라 극장인 도이체오퍼가 건립됐고, 동독에는 지금은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로 간판을 바꾼 베를린 심포니가 만들어졌습니다. 냉전 시기에 '한 도시 두 체제'가 들어서면서 음악 경쟁이 벌어졌다고 하면 낭만적으로도 들리지만 당시에는 올림픽 메달과 콩쿠르 입상마저 냉전(冷戰)의 대상이었습니다.

통독(統獨) 이후 늘어난 오케스트라 덕분에 베를린 시민의 행복도 두 배가 됐겠지만 고민거리도 두 배로 늘었습니다. 런던·파리 등 오래 전부터 통일 국가의 수도 역할을 해왔던 대도시와 달리, 베를린이 명실상부한 독일의 대표 도시가 된 것은 프로이센이 합스부르크 왕가를 누른 19세기 후반 무렵이고, 또한 나치의 집권과 세계 2차 대전, 뒤이은 분단으로 베를린의 문화 역량은 쪼그라질 대로 쪼그라들었습니다. 당장 이들 오케스트라를 먹여 살릴 방안부터 마땅치 않은 것이지요.

'전교 1등' 베를린 필이야 도이체 방크의 넉넉한 지원 속에 멀티 미디어 강화와 음악 교육 강화로 두 다리를 뻗고 있다지만 당장 2등부터는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베를린 명문 악단의 내한 공연에서 '독일 전통 사운드' 못지않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오케스트라 본가(本家)의 고민과 속내입니다.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 내한공연, 1월 31일 예술의전당, 슈베르트 교향곡 〈미완성〉, 베토벤 교향곡 5번·피아노 협주곡 4번(협연 김선욱), (02)599-5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