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죄는 한국 싫어 떠났는데 요즘은 '한국홍보' 바빠"

  • 김미리 기자

입력 : 2009.01.06 04:44 | 수정 : 2009.01.06 08:41

전시기획자 안애경씨… 1994년부터 핀란드 정착
"북유럽 사람들, 한국에 대해 너무 몰라 오기 생겨"

디자이너 겸 전시기획자 안애경(安愛卿·사진)씨는 드물게 북유럽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이다. 지난 1994년 핀란드에 정착해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에서 '종이와 의미(Paper & Meaning)'전 등 유명 디자인·예술·무용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

최근 국내 전시 기획과 강연을 위해 한국을 찾은 안씨를 서울 부암동에서 만났다. 노랗게 탈색한 머리를 한 그녀는 첫눈에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신문에는 연령 표기가 원칙"이라며 조심스레 나이를 묻자 그녀는 "그런 관행을 깨뜨리고 싶다. 내가 한국을 떠난 것도 그런 답답한 게 싫어서였다"며 끝내 대답을 회피했다. 안씨는 15년 전 "옥죄는 한국의 문화가 마냥 싫어" 무작정 한국 사람이 없는 핀란드로 갔다.

그랬던 그녀가 요즘 관심 가지는 주제는 '한국'이다. 지난 2007년 핀란드국립박물관에서 1년 동안 '한국의 집(Korealainen Koti)'전을 열었고, 지난해 10월 서울에서 열린 '공공 디자인 엑스포' 아트디렉터로 활약했다. 내년에는 핀란드 건축박물관에서 '한국 현대건축' 전시도 열 예정이다.

"북유럽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기가 생겨서였는지, 그렇게 피하고 싶었던 한국을 이제는 홍보하는 입장이 됐네요."
5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기획한 '한국의 집' 전시는 그녀의 한국 사랑이 농축된 행사였다. 한국에서 만난 매듭 장인이 쓰는 가구와 집기를 가져와 '한국의 전통 안방'을 재현했고, 장독대도 만들었다. 놋수저와 반상기, 바리때도 정성스레 전시했다. 푸른 눈의 핀란드 아이들이 한지로 전통조명을 만들고 퍼즐 맞추듯 한글 자모를 끼워 붙이는 이벤트도 열었다. 핀란드 관람객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해외에서 보는 한국 전통 전시는 '민속 박물관'을 옮겨놓은 듯해요. 부채춤 추고, 사물놀이를 해야 전통의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죠. 수준 높은 북유럽 관람객들에게 그런 게 먹힐 리 만무합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관람객들이 바리때, 옹기 등 한국의 군더더기 없고 기능적인 디자인 제품에 열광했다. 디자인에 관한 한 최고라고 자부하는 그들의 입에서 "북유럽 디자인과 한국 디자인이 통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안씨는 "요즘 한국에선 북유럽 스타일 디자인이 인기라는데, 우리는 너무 먼 곳에서 디자인을 보려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번에 한국에 와서 그녀는 '작품' 하나를 발견했다. "시장에서 한 아주머니가 플라스틱 의자에 스펀지를 친친 감아서 폭신한 손님용 의자를 만들어 놨더라고요. 상대를 위한 배려와 독창성이라는 디자인 기본에 이만큼 충실한 작품이 어디 있을까 싶더라고요." 그녀는 앞으로도 한국의 '일상 속 걸작'을 탐험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