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마지막 충고는 '결코 웃음을 잊지 말라'는 것"

  • 박돈규 기자

입력 : 2008.12.29 03:10

英배우들, 타계한 극작가 해럴드 핀터 애도

"…당신이 지금 삶에서 대접받고 싶은 것만큼 이 죽은 사람을 대접해 달라."

지난 24일 78세를 일기로 별세한 영국의 극작가 해럴드 핀터(Pinter ·사진)는 자신의 장례식에서 읽어달라며 이런 문장을 남겼다.

핀터가 떠난 빈자리를 아쉬워하는 배우들의 애도가 이어졌다. 런던의 듀크 오브 욕 극장에서 핀터의 《사장된 땅》(No man's Land)을 공연 중인 배우들은 무대에서 추모사를 낭독했다고 27일 BBC 인터넷판이 전했다. 영화 《해리포터》에서 덤블도어 역을 맡았던 배우 마이클 갬본은 26일 저녁(한국시각 27일) 이 극장 무대에 올라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 핀터가 남긴 문장을 낭독했다. 객석은 무거운 침묵에 빠졌다. 훌쩍이는 사람이 많았다. "세계는 위대한 문인 한 명을 잃었다"고 운을 뗀 배우 데이비드 브래들리는 "핀터가 배우들에게 준 마지막 충고는 '경쾌하고 빨라야 하며 결코 웃음을 잊지 말라'였다"고 했다.
2005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핀터는 《고도를 기다리며》의 베케트 이후 인간 실존의 부조리를 희극적으로 극대화한 극작가다. 1958년 1주일간 공연된 《생일파티》가 호평받으며 기대주로 주목받았고, 엉뚱한 사람이 주인행세를 하는 《관리인》(1960)으로 세계적인 작가의 자리를 굳혔다. 작가이자 배우 겸 연출가였고, 시나리오와 라디오 대본까지 쓸 정도로 재능이 많았다.

핀터는 말(言語) 비틀기와 유머감각으로 영국의 희극 전통을 현대적으로 되살렸다. 이런 그의 스타일은 '핀터레스크'라는 말을 낳았다. 같은 말을 되풀이하거나 전혀 다른 의미로 희화화하는 게 그의 특기였다. 성격이나 동기를 대담하게 무시한 작풍으로 연극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2005년 그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테러·전쟁 같은 시대적 상황과도 관련이 있었다는 평가이다. 영화 《사랑의 여로》의 여배우 글렌다 잭슨은 "핀터의 죽음은 연극계뿐 아니라 인권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에게도 큰 손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