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황당한 콩가루집안 이야기 관객은 너무 놀라지 마시길…

  • 박돈규 기자

입력 : 2008.12.27 06:24

극단 골목길의 '너무 놀라지 마라'
'청춘예찬' 박근형의 신작
부조리한 현실을 살아가는 가족들의 일상 그려내

연극《너무 놀라지 마라》는 슬픈 코미디다. 시아버지가 죽은 날에도 노래방 도우미로 출근한 며느리(장영 남)와 동네 총각(김동현)이 노래하고 있다. /골목길 제공
너무 놀라지 마라. 극단 골목길의 연극 《너무 놀라지 마라》(박근형 작·연출)는 이렇게 말한다. 치밀한 흉계 또는 반어법이다. 이 연극을 보고 놀라지 않기란 '미션 임파서블'에 가깝기 때문이다.

여기 가족 2대(代)가 있다. 구성원은 아버지(이규회), 어머니, 영화감독을 지망하는 맏아들(김영필), 둘째 아들(김주완), 그리고 맏아들의 아내(장영남)다. 도박 때문에 어머니가 가출하는 게 사건①이다. 기원을 운영하다 망한 아버지는 실의에 빠진다. 그런데 그를 죽음으로 내모는 사건②가 터진다. 낚시터에서 알게 된 사람의 장례식장에 문상 갔더니 집 나간 부인이 상(喪)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때는 2008년 말이다. 아버지는 화장실에서 목을 매 자살한다. 그런데 놀라움은 이제부터다. 벌이가 거의 없는 맏아들은 영화 불황의 시기에 자기 작품을 영화화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사건③: 그는 부친상을 당하고도 장례식을 하기는커녕 시나리오 작업으로 바쁘다. 아내는 더 눈물겹다. 사건④: 생활고를 해결하려고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밤에도 "연말연시가 대목"이라며 노래방 도우미로 출근한다. 사건⑤: 그녀를 좋아하며 기다리는 총각(김동현)이 있기 때문이다. 사건⑥: 변비에 시달리는 둘째 아들은 남몰래 형수를 사랑하고 있고 아버지의 시신 옆에서 찬밥을 차려 먹는다.

"남루한 것은 무대에 올려서는 안 된다는 연극인들의 자기검열을 깬 극작가 겸 연출가"라는 평을 받는 박근형의 2009년 신작이다. 《너무 놀라지 마라》는 황당한 콩가루 집안 이야기다. 시련 속에서도 식구들은 꿈쩍 안 하고 일상을 이어간다. 그런데 《경숙이, 경숙아버지》 《청춘예찬》의 박근형은 이 연극을 코미디라고 불렀다. "아버지가 죽었지만 어쩔 수 없이 생존에 매달리는 가족들의 남겨진 삶 때문"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목을 매기 전 남긴 유언이 '너무 놀라지 마라'다.

▶1월 7일부터 2월 1일까지 서울 산울림 소극장. 월요일에 공연하고 화요일에 쉰다. (02)334-5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