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12.19 14:41
세계를 사로잡은 안무가 허용순

무대 위에서 무대 뒤로
예술은 길다지만 무용은 너무 짧다. 타 장르는 아티스트의 감각과 세계가 숙성되는 시간을 기다려 주지만 무용은 맛을 알 때쯤 접어야 하는 슬픈 운명을 타고났다. 여든 노파라도 그림은 그릴 수 있고, 악기는 연주할 수 있건만 무대에서 춤을 출 수는 없다. 발레리나의 생명은 보통 마흔 언저리에서 끝나기에 그들은 절정을 경험하기도 전에 은퇴부터 준비해야한다. 은퇴 후 안무가가 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도 있지만 몇몇의 유명 발레리나들은 “춤 실력과 안무하는 능력은 완전별개”라는 이유로 아예 안무가를 거론조차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허용순의 존재는 독보적인지 모른다. 유럽 유수의 발레단에서 활약하며 에곤 메디슨, 윌리엄 포사이드, 존 프랑코, 우베 숄츠 등 수많은 안무가의 뮤즈였던 그녀가 안무가로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것을 보면. “안무가들을 동경하고 존경했을 뿐, 저도 안무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좋은 안무 하나 만들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오랫동안 보아왔으니까요. 수석무용수 시절부터 뒤셀도르프발레단의 발레 마스터를 겸했는데 1998년 일본의 뉴에이지 음악으로 ‘허 기타로’란 소품을 만들면서 안무에 눈을 떴어요. 발레단 디렉터 유리 바모슈의 추천을 받아 2001년 '그녀는 노래한다'를 만들면서 ‘안무하는 맛’에 빠져들었죠.”
'그녀는 노래한다'의 호평으로 본격적인 안무가의 삶이 열렸다. 그녀가 몸담고 있는 독일 뒤셀도르프 발레단뿐 아니라 슈베린발레단, 미국의 털사발레단, 호주의 퀸즐랜드발레단 등이 그녀를 찾았다. 30년간 무대 위에서 춤추며 체득하고, 함께 작업했던 위대한 안무가들에게서 배운 몸의 언어들은 그렇게 나날이 새 생명을 얻어 재탄생 되었다.
'문 뒤의 이야기' 'Backstage' '슬픔의 왈츠' 'This is Your Life' '천사의 숨결' 등 이제는 제법 빼곡해진 그녀의 작품 서고에 최근 따끈한 신작이 추가되었다. 지난달 ‘크로싱 더 댄스’(11월 7~8일, 아르코예술극장)로 현대무용가 박호빈과 조우한 그녀는 신작 'Sound of Silence'를 선보였다. “그동안 무수한 무용수들과 작업했지만 현대 무용수들과는 이번이 첫 만남이에요. 보통 작품 의뢰를 받으면 95% 정도는 만들어 놓고 현장에서는 사소한 부분만 수정하는데 'Sound of Silence'는 65% 정도 만든 후에 무용수들을 실제 만나보고 함께 해보면서 변화를 주었죠. 특히 주로 솔로 안무에 쓰는 ‘슈피겔 인 슈피겔’ 이란 곡을 저는 듀엣 안무에 써보고 싶어서 이번 작품의 마지막 파트에 도입했는데 무용수들이 잘해줘서 곡도 살고 안무도 살았어요.”
이번 공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 중 하나는 수화. 허용순은 작품 도입부에 세 여자의 서로 다른 사랑의 방식 수화를 끌어들여 이야기했다. 웬만하면 말하지 않고 속으로 삭히는 여자들을 대변하는데 그만한 수단이 또 있을까. 그녀는 수화를 통해 사랑, 믿음, 외로움, 아픔이란 감정이 모두 하나로 통해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오롯이 춤으로 채운 40년
허용순이 춤과 인연을 맺은 세월을 엄밀히 따져보자면 올해로 꼬박 40년이 채워진다. 그녀가 처음 무용을 시작한 건 말문이 채 트이기도 전인 3살 때였기 때문. 미용실을 운영하던 어머니가 세 살배기 어린 딸을 동네 한국무용학원에 맡겼다. 집안 사정으로 무용수의 꿈을 접어야 했던 어머니는 딸에게 무용 뿐 아니라 피아노, 미술 등 아낌없는 뒷바라지를 해주었다.
무용에 소질을 보인 허용순은 1976년 리틀엔젤스 예술중학교(지금의 선화예중)에 입학했다. 같은 해 학교 측은 미국인 발레 지도자 애드리엔 델라스를 초빙, 발레 클래스를 만들었고 허용순은 그때부터 발레를 전공하게 되었다. “애드리엔 선생님이 유학을 적극 권하셨어요. 저를 비롯해 유니버설발레단 문훈숙 단장, 서울발레시어터 김인희 단장 등 5명이 모나코 왕립발레학교로 유학길에 올랐죠. 우리들은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늘 가장 먼저 연습실에 와서 스트레칭을 했고 맨 마지막에 연습실에서 나왔지요.”
모나코에 있는 동안 네오클래식과 모던 발레에 매력을 느낀 그녀는 중대한 결심을 한다. 한국에 들어가는 대신 유럽에서 더 활동하고 싶다는. “그때만 해도 동양인이 외국 컴퍼니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래도 어느 컴퍼니든 문을 두드려볼 요량으로 한 달짜리 기차 티켓을 샀는데, 1983년 첫 오디션을 봤던 프랑크푸르트 발레단에 덜컥 붙어버렸어요. 입단한 다음해 윌리엄 포사이드가 발레단의 디렉터로 왔는데 제가 'Say Bye Bye'의 주인공으로 뽑힌 거예요. 높은 하이힐을 신고 섹시한 드레스 입고 춤을 춰야하는데 그때만 해도 19살이라 ‘섹시’를 표현하기에 너무 어렸죠. 오죽하면 포사이드가 거울보고 따로 ‘섹시’ 연습 좀 하라고 했으니까. (웃음)”
그 후 우베 숄츠의 작품에서 허용순은 또 다시 주역으로 발탁되었고 그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취리히 발레단에 그녀를 추천했다. 춤보다 ‘탄츠시어터’의 비중을 늘려가던 포사이드를 떠나 취리히 발레단에서 2년을 보내던 중 그녀는 하인츠 슈페이얼에게 스카우트되어 스위스 바젤 발레단의 솔리스트로 8년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바젤에서 그녀의 인생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두 사람을 만났다. 지금의 남편 유록 시몬과 그녀의 선배이자 스승인 유리 바모슈가 그들이다.
“바젤에 있는 동안 유리 바모슈 덕분에 8년 만에 다시 포사이드의 작품이며 조지 발란신, 존 프랭코, 한스 반 마넨 등 좋은 레퍼토리를 실컷 출 수 있었어요. 그래서 다른 발레단의 러브콜도 마다하고 남편과 함께 유리를 따라 뒤셀도르프 발레단으로 오게 되었죠. 덕분에 가장 좋아하는 안무가 마츠 예크도 만날 수 있었고요. 동양인 최초로 마츠 예크의 '카르멘' 주역을 맡았던 기억을 어찌 잊겠어요.” 허용순은 2006년 국립발레단의 '카르멘' 공연 때 마츠 예크의 조안무로 활동했으며 그녀의 작품 'Back Stage'를 함께 무대에 올렸다.
자상한 동료이자 든든한 지지자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딸 유진을 낳은 후 그녀는 1년을 더 주역으로 춤을 추고 2004년 은퇴했다. 우려와 달리 몸은 춤의 근육을 잊지 않았고, 그 1년 동안 어떤 때보다 신나게 춤추고는 미련 없이 발레 슈즈를 벗었다.
털털한 사람 냄새나는 춤, 그리고 삶
안무가 허용순은 훌륭한 스토리 텔러다. 그녀의 작품이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요인 중 하나는 누가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무용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이 마주한 세계를 맑고 청량한 공기로 정화시키는 힘을 지녔다. 최근작 'Sound of Silence'만 봐도 그렇다. 사랑, 믿음, 진실, 아픔, 외로움 등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인간의 감정으로 만들어진 몸짓 언어는 적절한 음악을 만나 애잔하게 관객들의 가슴을 적셨다.
이제 한국에서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독일로 돌아가면 전문 무용수 대상의 특강을 시작으로 발레학교 학생들을 위한 수업이며, 딸에게는 못 다한 엄마 노릇을 해줘야 한다. “제가 일 때문에 외국에 나오면 시댁 식구들이 빈자리를 채워주시니 감사하고 죄송할 따름이죠. 또 이렇게 왔다 가면 한편으로는 친정어머니께 죄송해져요. 어린 나이부터 늘 손님처럼 잠깐씩 왔다가는 게. 그래서 딸아이를 낳고부터는 매해 여름을 한국에 와서 보내요. 언젠가 어머니께서 ‘나를 주제로 안무해보라’는 농담을 하신 적이 있는데 일부러 배경을 1960년대로 한 'This is Your Life'에 미용사를 등장시켰어요. 운 좋게도 이 작품을 미국의 털사발레단이 한국에 가져와서 어머니께서도 보실 수 있었죠.”
8년 째 안무가의 길을 걷고 있는 허용순의 작품에는 늘 ‘사람’이 보이지만 결코 진부하지 않은 그만의 스타일이 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작품에는 혹평을 찾아보기 힘들다. “작년에 슈베린발레단의 의뢰를 받아 '로미오와 줄리엣' 전막을 안무했어요. 리뷰도 잘나왔고, 저로서도 가장 해보고 싶던 테마였던 터라 소원을 푼 셈이죠. 앞으로도 전막 작품을 많이 해보고 싶어요. 기회가 닿으면 '지젤'을 모던화 시키고 싶은 생각도 있고요. 제 마음이야 그런 작업들을 한국 무용수들과 하고 싶죠. 아직 우리나라 발레단의 경향이 클래식 위주라서 아쉽지만요. 에너지며 움직임이 저랑 잘 맞을 것 같은 LDP무용단과 역동적이면서도 한국무용 특유의 아름다운 선을 잘 조화시켜내는 국립무용단의 남성 무용수들과는 꼭 한 번 함께 작업해보고 싶어요.”
에이전트 없이 직접 활동하는 허용순은 그 나라, 그 컴퍼니 크기와 수준에 맞춰서 작품의 가격을 다르게 받는다고 했다. 안무하랴, 가르치랴, 엄마 노릇하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라 에이전트를 고용할까 싶다가도 쉽게 정 주는 일에 그만 주저하고 만다고 한다. 일의 관계 이전에 사람의 관계를 먼저 생각하는 그녀에게서 늦가을의 향기보다 짙은 사람 냄새가 물씬 풍겼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