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ABC] 바로크 연주자들, '패밀리가 떴다'

  • 김성현 기자

입력 : 2008.12.18 03:32

대를 이어 고음악을 연주하는 조르디 사발(왼쪽에서 두 번 째) 가족. /유유클래식 제공
흔히 '음악은 핏줄을 타고 흐른다'고 하지만, 유독 옛 음악을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바로크 연주자 중에는 부부와 형제 등 일가족이 함께 매달리는 '음악 명가(名家)'가 많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지휘자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Harnonco urt·79)와 바이올리니스트 앨리스 아르농쿠르(78) 부부가 대표적입니다. 1953년 고(古)음악 연주 단체의 시초로 꼽히는 '콘첸투스 무지쿠스 빈(Concentus Musicus Wien)'을 함께 결성한 뒤, 지금까지 반세기 이상 남편의 지휘에 맞춰 아내가 연주하는 '부부 앙상블'을 과시합니다. 지난 2006년 인터뷰 때도 남편이 예의 번뜩이는 눈빛으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동안, 아내 앨리스는 악보를 꺼내 들고 뒤편 소파에 조용히 앉아 공부하고 있었지요.

프랑스의 하프시코드(피아노의 전신) 명인인 피에르 앙타이(44) 역시 큰형 마크 앙타이(48)가 바로크 플루트, 작은형 제롬 앙타이(47)는 옛 현악기 비올과 건반 악기를 연주하는 '바로크 삼형제'입니다. 벨기에의 쿠이켄 형제는 빌란트 쿠이켄(첼로·70), 지히스발트 쿠이켄(지휘 및 바로크 바이올린·64), 바르톨드 쿠이켄(플루트·59) 등 6형제 가운데 3명이 바로크 전문 연주자입니다.

스페인 카탈루냐 출신의 조르디 사발(Savall)은 일가족 4명이 모두 고음악을 연주하거나 노래합니다. 사발은 지휘자이면서 첼로와 비올라 다 감바 등 옛 현악기를 연주하고, 아내 몽세라 피구에라스는 옛 음악 전문 소프라노로 활동합니다. 딸 아리아나 사발은 하프와 성악을, 아들 페란은 기타·류트와 역시 노래를 각각 맡습니다. 이들 가족은 '에스페리온 21'이라는 단체명으로 함께 공연을 갖기도 하지요.

21·23일 자신의 악단 〈르 콩세르 데 나시옹(Le Concert des Nation s)〉을 이끌고 내한하는 사발은 전화 인터뷰에서 "부모와 자식까지 함께 고음악에 매달리는 건 우리 집안뿐 일 것"이라며 "쿠이켄 형제나 앙타이 형제도 우리 가족에는 못 당한다"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음악적 재능은 유전되는 것인지 궁금증도 생깁니다. 인터뷰에서 사발은 "물론"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재능은 단지 일부일 뿐이며 어렸을 적부터 가족과 함께 음악을 듣거나 연주한 경험, 훌륭한 스승 밑에서 엄격하게 배우고 연습하는 과정이 음악가로 성장하는 데 훨씬 중요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사발 가족도 오래전부터 성탄절이나 부활절이면 음악을 함께 연주했지만, 자식들이 전문 연주자가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사발은 "한 번도 권하거나 강요한 적은 없다. 어디까지나 그들(아이들)의 선택"이라고 했습니다.

사발 일가는 올해로 10년째 독립 음반사 '알리아 복스(Alia Vox)'를 운영하고 있는 가족 경영인이기도 합니다.

▶조르디 사발과 〈르 콩세르 데 나시옹〉 내한 공연, 21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23일 고양아람누리, (02)586-2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