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노래로 행복해지는 이유

  • 성남문화재단
  • 글=유형종(음악 칼럼니스트)

입력 : 2008.12.10 20:09

14일 안네 소피 폰 오터 내한 공연

2006년 봄, 성남아트센터에서 있었던 안네 소피 폰 오터의 첫 리사이틀에 대한 인상은 아직까지도 선명하다. 당초 공연 프로그램 책자의 곡 해설을 쓰기로 한 분의 일정에 차질이 생긴 바람에 급하게 필자가 대신 작성했는데, 잘 모르는 곡들이 있어서 자료와 음원을 찾느라 쩔쩔 맺던 기억 때문에 더욱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공연 당일의 분위기야말로 폰 오터가 창조하는 분위기를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이었다.

두텁고 풍요로운 메조소프라노의 전형이 아니라 매끈하고 섬세하게 통제된 음색, 학구적인 선곡과 이지적인 곡 해석이 돋보였다. 그러면서도 관객과 함께 호흡하고 싶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프로그램까지 확실히 포함시키고 있었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곡이 아닌 직접 찾아냈음이 역력히 드러나는 곡이었다는 점은 과연 그녀다운 면모였다.

2008년 12월, 폰 오터가 다시 한국을 찾으며 들고 온 프로그램은 지난번과 전혀 다르다. 크리스마스 콘서트로 꾸민 덕분인데, 이런 특이한 구성도 폰 오터의 또 다른 면모다. 특히 최근에 녹음한 레퍼토리 위주로 음반 홍보를 겸해 리사이틀을 꾸미는 것이 일상화된 여느 가수들과 달리 폰 오터는 오래 전에 집중했던 곡들을 다시 끄집어내 노래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리사이틀도 그런 성격이고, 그렇기에 폰 오터는 항상 예상을 깨는 신선함을 선사한다.

스웨덴 출신 메조 소프라노 안네 소피 폰 오터/사진=성남문화재단

삶의 이름으로 예술은 완성된다

폰 오터는 1955년 5월 9일, 스톡홀름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스웨덴 사람이라고 못 박을 수 없을 만큼 어려서부터 국제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부모가 늦둥이로 얻은 딸이었는데 부친이 외교관이었던 탓에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린 시절을 주로 보낸 곳은 스톡홀름과 독일의 본, 영국의 런던이라고 한다. 본격적인 음악교육을 받은 곳도 런던이다.

길드홀 스쿨에서 공부하고 스위스의 바젤 오페라와 계약을 맺고 1983년 하이든의 오페라 '오를란도 팔라디노'로 데뷔했다. 격조 높은 노래 실력뿐 아니라 큰 키에서 비롯되는 무대 위에서의 아우라는 활동 초기부터 헨델과 몬테베르디를 위시한 바로크 오페라의 영웅 역인 카스트라토가 불렀던 곡들로 명성을 쌓았다.

1985년 코벤트 가든 로열 오페라, 1987년 라 스칼라, 1988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데뷔하면서 폰 오터의 성가는 나날이 높아갔다. 그러나 그녀가 오페라에만 주력했다면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을 보여주지 못했을 것이다. 뛰어난 피아니스트 뱅크트 포르스베리와 함께 독일 리트와 프랑스 멜로디에서도 발군의 성과를 낸 것이야말로 폰 오터를 다른 메조소프라노와 구별시킨 가장 큰 무기였다.

여러 언어에 능통한 폰 오터의 장기와 서늘한 음색, 모든 곡을 깊게 연구해 최선의 해석을 이끌어내는 미덕이 어우러져 특히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 말러, 볼프, 코른골트 등 독일 리트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냈다. 이를 바탕으로 그리그, 시벨리우스, 자국의 알펜, 스텐함마르 등 북유럽 가곡에서도 독보적인 입지에 올랐다. 우리에게 익숙한 폰 오터의 이미지는 이렇게 형성되어왔다.

그러나 폰 오터를 북유럽적인 어두운 시정의 소유자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선입견이다. 그녀는 인생을 즐길 줄 안다. 연간 공연 횟수는 일정한 수준 이하로 통제 할 뿐 아니라, 수많은 음반을 냈지만 겹치기로 녹음을 진행하는 법은 드물다. 이는 남편과 두 자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1989년에 결혼한 4살 연하의 남편 베니 프레드닉슨이 스웨덴의 희극 배우란 점이다. 일과 가정이 일치할 수는 없겠지만 뭔가 즐거운 일로 가득한 가족이 연상되지 않는가? 아마도 그게 맞을 것이다. 폰 오터는 어느 순간부터 크게 소문내지 않으면서도 “드높은 지성미 대신 좀 차가운 것 아니냐?”는 자신의 평판과는 전혀 다른 작업을 진행해왔기 때문이다.

음반이나 영상물을 기준으로 할 때 필자의 기억으로는 1995년 존 엘리엇 가디너가 지휘한 쿠르트 바일의 노래들이 주목할 만한 첫 결실이었다. 이유를 꼽자면 바일의 아내였던 로테 레냐가 불렀던 카바레 분위기의 곡이기 때문이다. 1999년에는 이번 내한 공연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음반 'Home for Christmas'을 발표했다.

2년만에 내한 공연을 갖는 메조 소프라노 안네 소피 폰 오터/사진=성남문화재단
당시 남편의 권유로 크리스마스 노래를 준비하기 시작한 그녀는 높은 수준의 실내악 분위기이면서도 포크송 느낌을 살리기 위해 현악기 외에 목관, 타악기, 키보드, 심지어 아코디언과 스웨덴 전통악기까지 끌어들였다. 이번 내한 공연에도 이런 앙상블이 그대로 동원된다.

2001년에는 펑크 록 뮤지션 엘비스 코스텔로와 만나 성악가답지 않게 마이크를 가까이 대고 대중가수의 창법으로 녹음해 적지 않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러나 클래식 음악가인 그녀이기에 자칫 편견을 가질 수 있는 이러한 녹음 기법조차도 그녀가 가지고 있던 명성에 전혀 누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이미 독특한 경지에 이르고 있었다. 이듬해에는 자크 오펜바흐의 오페레타 아리아를 부른 파리 샤틀레 극장 실황이 음반과 영상물로 나왔다.

오펜바흐의 노래는 어떻게 보면 대단히 경망스러운 것인데도 이를 능청스럽게 불러내는 폰 오터의 노래를 직접 들어보면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전혀 할 수 없다. 이 작업은 바로크 스페셜리스트로 폰 오터와 많은 연주를 함께한 마르크 민코프스키가 뜻밖에 오펜바흐에 경도된 것을 보고 폰 오터가 기꺼이 도와준 것인데,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임했기 때문에 오페레타의 오락적 측면을 100퍼센트 살릴 수 있었다.

끝으로 정보 하나를 덧붙인다면 외교관이었던 그녀의 부친 괴란 폰 오터도 유명한 인물이다. 우리나라에는 개봉되지 않았지만 정치 영화의 거장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아멘'(2002)이란 영화가 있다. 나치의 핵심당원이면서도 비밀리에 자행된 유태인 학살을 다른 나라 지도자와 교황청, 그리고 양식 있는 독일인에게 알리고자 힘썼던 쿠르트 게르슈타인에 관한 영화다. 괴란은 홀로코스트가 세상에 알려지기 전에 한 열차에서 우연히 게르슈타인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듣고 스웨덴 외무성 고위층에 알렸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스웨덴 당국은 ‘제 코가 석자’였는지라 그 정보를 동맹국들에 알리는 것을 게을리 했다. 전쟁이 끝나고 괴란은 게르슈타인이 전범 혐의로 체포된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정의로운 행동을 입증하고자 노력했지만 결국 게르슈타인은 감옥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최근에 폰 오터는 나치의 유태인 캠프에 수용되었던 작곡가들의 곡을 수록한 음반을 냈는데 그 배경이 여기에 있는 것이며 1988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추모도 겸한다고 할 것이다.

안네 소피 폰 오터의 '크리스마스 콘서트'
일시 : 12월 14일 5시
장소 :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
문의 : 031-783-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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