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연극 '신의 아그네스'

  • 성남문화재단
  • 글=고미진

입력 : 2008.12.12 02:49

배우 윤석화의 출연과 영화감독 한지승의 연출로 화제가 되고 있는 연극 '신의 아그네스'/사진=성남문화재단

1983년 실험극장 초연 당시, 최장기 공연과 최다 관객 동원의 신화를 남긴 연극 '신의 아그네스'가 오랜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다. 오랜 시간을 거쳐 검증된 사실처럼 이 작품은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획득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번 무대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는 단연 배우 윤석화의 행보 때문이다.

지난 2006년 연기 인생 30주년 기념공연인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마지막으로 무대를 떠났던 배우 윤석화가 연극 '신의 아그네스'로 다시 한 번 무대를 향해 손을 내밀고 있다. '신의 아그네스'로 무대에 서는 것은 1998년 연극인 손숙, 박정자 등 원년 멤버와 공연한 뒤 꼭 10년 만이다. 지난 10월 28일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있었던 제작발표회에서 그녀는 “무엇보다도 '신의 아그네스'처럼 떨리고 눈물 나는 작품은 없다. 연극을 사랑하는 관객이 극장에 모이고 나를 스타로 만들어준 작품으로 신인 때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여러 배우들이 아그네스를 연기했지만 아그네스를 떠올렸을 때면 어김없이 윤석화의 이름이 오버랩될 정도로 그녀가 지닌 아그네스의 이미지는 강하다. 표현하기 힘든 내면을 청순하면서도 강렬하게 그녀만큼 잘 소화해낸 아그네스는 드물기 때문이다. 수차례 공연이 진행되면서 오직 아그네스만을 연기했던 그녀가 이번 공연에서는 닥터 리빙스턴으로 관객을 만난다. 인간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삶의 목적에 대해 진지한 자문을 던지고 극의 종반으로 갈수록 심리적으로 가장 큰 변화를 겪는 인물은 아그네스보다 닥터 리빙스턴 쪽이다. 어쩌면 작품의 헤게모니는 아그네스가 아니라 리빙스턴이 쥐고 있는지도 모른다. 쉽지 않은 캐릭터의 변화에 대해 손숙이 보여줬던 침착하고 섬세한 리빙스턴의 이미지를 윤석화는 어떻게 탄생시킬지 주목할 만하다.

또 다른 관람 포인트는 연출가이다. 연극에 처음 도전하는 영화감독 한지승은 영화 '고스트맘마' '하루'와 최근작인 '싸움', 드라마 '연애시대'를 통해 남다른 감수성으로 심리 묘사에 중점을 둔 연출로 인정을 받고 있다. 한 감독의 연극 연출은 이번이 처음이다. 장르를 넘어선 도전을 보여줄 한 감독은 “좋은 배우와 함께 작업하게 되어 기쁘다. 부디 몸소 연극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라며 연극 데뷔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아그네스 역을 맡은 신예 연극 배우 전미도/사진=성남문화재단

자화상을 보다

1979년 미국에서 최고 희곡상을 수상한 존 필미어의 '신의 아그네스'는 1982년 브로드웨이로 진출해 롱런했으며, 1985년에 작가가 직접 각색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동명의 영화를 제작해 호평을 받기도 했다. 임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출산을 하자마자 아기를 목 졸라 죽인 수녀라는 충격적인 소재를 바탕으로 믿음을 둘러싸고 쏟아지는 질문과 섬세한 심리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탯줄을 목에 감아 아기를 살해한 수녀 아그네스,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정신과 의사 리빙스턴, 아그네스를 보호하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원장 수녀 미리암의 팽팽한 심리전이 관객을 전율케 한다. 아그네스의 모습을 통해 심리적 변화를 겪는 닥터 리빙스턴의 모습은 신과 인간, 그리고 믿음에 대해서 진지한 성찰의 시간을 던져줄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진정한 삶의 중점을 어디에 둘 것인지에 대해 자문하고 반문하는 리빙스턴을 비롯한 세 여자의 모습을 통해 관객은 어쩌면 자신의 자화상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한국연극 100주년을 맞은 2008년의 화려한 대미를 장식할 이번 공연에 리빙스턴 역의 윤석화와 함께 원장 수녀 역에는 배우 한상미가 본명 한복희란 이름으로 무대에 설 예정이다. 주인공 아그네스 역엔 창작뮤지컬 '사춘기'에서 작품에 대한 또렷한 해석으로 이미지 굳히기에 성공한 신예 전미도와 윤석화 본인이 “길에서 보석을 주은 것 같다”고 표현한 박혜정이 함께 출연한다. 전미도는 어리고 가녀린 외모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에너지를 인정받아 단번에 아그네스 역에 캐스팅되는 행운을 얻었다.

얼어붙은 경제만큼이나 연극계에 한파가 몰아치고 있는 요즘, 치열하고 성실하게 준비하는 한지승 감독과 윤석화, 한복희, 전미도, 박혜정의 노력이 올 겨울 ‘소극장열풍’을 몰고 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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