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추워지는 겨울… '뜨거운 부정(父情)'을 만나다

  • 김기철 기자

입력 : 2008.11.27 04:48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

‘지붕 위의 바이올린’마지막 장면. 바이올린을 건네받은 소년이 연주를 하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극장에 들어서면 무대 위는 이미 '공연 중'이다. 밤하늘을 향해 두 팔 벌린 하얀 떡갈나무와 반짝이는 등불, 낙엽이 수북이 쌓인 거리가 관객을 맞는다. 1900년대 초반, 우크라이나 시골 마을 아나테프카. 다섯 딸을 둔 우유장수 테비에 가족이 사는 유대인 마을이다.

막이 오르면 지붕 위에서 누군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다. "전통이 없었으면 우리 인생은 매우 위태로웠을 것이다. 마치 저 지붕 위의 바이올린 연주자처럼." 테비에는 고백한다. 그러나 전통은 밀려오는 파도에 허물어지는 모래사장 신세다.

큰딸 자이틀은 부모가 맺어주려는 부자 라자르를 마다하고 가난뱅이 재단사 모틀과 결혼한다. 둘째 딸 호들은 혁명 청년 페르칙과 사랑에 빠지고, 셋째 딸 하바는 러시아 청년 피에드카와 몰래 결혼식을 올린다. "전통이란 것도 과거의 유행이 아닐까." 딸들의 행복을 위해 테비에는 한걸음씩 물러난다. 종반, 러시아 관리가 결정타를 날린다. 유대인들에게 당장 마을을 떠나라는 추방령이다. 쪽지 하나에 전통은 고사하고 수백 년 살아온 고향을 떠나게 됐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연출 구스타보 자작)은 테비에에게 무거운 짐을 지운다. 테비에는 내레이터이자 드라마와 음악을 이끌어가는 주역이다. 중견 배우 김진태는 엄격하면서도 따뜻한 아버지 테비에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그러나 쉰 듯, 가라앉은 목소리는 〈만약 내가 부자라면〉 〈테비에의 꿈〉 〈선 라이즈, 선 셋〉 같은 주요 아리아를 끌고 가기에는 다소 힘들어 보였다. 우크라이나의 시골 마을을 재현한 무대세트와 25명의 오케스트라가 펼치는 선율은 고급 식당에서 정성껏 준비한 만찬처럼 깔끔하고 세련됐다. 20~30대에겐 이국적 정서를, 중년 관객에겐 향수를 자극할 만하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1964년 제롬 로빈스(Robbins) 연출로 뉴욕에서 막 올려 최우수 작품상 등 토니상 11개 부문을 휩쓸었고, 1971년작 영화도 아카데미상을 받은 고전이다. 이번 공연은 2004년 브로드웨이의 리바이벌 프로덕션을 가져왔다.

▶12월 28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02)501-78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