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우린 왜 공개 리허설을 즐길수 없나

  • 김기철 기자

입력 : 2008.11.24 03:04

뉴욕필, 본공연 오전에 단돈 2만원에 공개
싸고 좋은 자리서 화음 조율 지켜볼 기회

사이먼 래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가 20일 예술의전당에서 공개 리허설을 참관한 학생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제공
지난 12일 오전 9시45분 뉴욕 링컨센터 애버리 피셔홀에 인파가 모여들었다. 평일 아침인데도 1층과 2층은 물론 3층까지 청중들이 들어찼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리허설을 참관하기 위해서였다. 바이올리니스트 길 샤함(Shaham)이 빨간 티셔츠, 흰 운동화 차림인 것을 비롯해 뉴욕 필 단원들과 베른 심포니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안드레이 보레이코(Boreyko)까지 캐주얼 차림으로 지휘대에 올랐다.

이날 연주곡은 리야도프, 하차투리안, 칸첼리, 스트라빈스키 등 옛 소련 작곡가들의 협주곡과 관현악. 보레이코는 하차투리안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지휘하면서 악장마다 잠깐씩 중단시켰다. "네 번째 소절부터는 좀 더 부드럽게 해주세요." 관객들은 이날 저녁 연주를 앞두고 지휘자가 마지막까지 최상의 음을 빚어내는 과정을 지켜봤다.

세계 정상급 뉴욕 필의 공개 리허설 티켓 값은 단돈 16달러. 정식 공연 티켓 최고가의 15~20% 수준이며 자리도 마음대로 골라 앉을 수 있는 자유석이다. 뉴욕 필은 시즌 중 저녁 연주회가 있는 날 오전 9시45분부터 12시30분까지 매달 2~4차례 공개 리허설을 정례화했다.

뉴욕 필 공개 리허설은 비싼 티켓에 부담을 느끼는 노인들과 여성, 호주머니 가벼운 학생들이 주요 관객이다. 아내와 함께 2층 객석에서 리허설을 참관한 사울 에릭(Ehrlich·76)씨는 "1년에 서너 차례 공개 리허설을 보러 온다"며 "싼 값에 좋은 자리에서 최고 수준의 공연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말했다. 옆자리에 앉은 이스라엘 관객도 "뉴욕에 사는 아들을 만나러 올 때마다 뉴욕 필 리허설에 들른다"고 했다.
지난 주 내한공연을 가진 베를린 필하모닉은 20일과 21일 오전 각각 청소년 400명씩을 초청, 최종 리허설을 공개했다. 상임지휘자 사이먼 래틀은 휴식시간에 청소년 100여 명에게 웃는 얼굴로 사인도 해줬다.

하지만 국내에선 오케스트라의 공개 리허설을 보기 힘들다. 전용 홀이 없거나 관객 참여 저조, 또는 음악인의 소극성 등이 이유다. 국내 대표적 오케스트라인 서울시향은 "공개 리허설을 해보고 싶긴 한데 전용 홀이 없어서…"라고 주저한다. 오전부터 리허설을 하려면 공연장 대관 비용과 티켓 판매·공연장 관리 인력 비용이 추가로 든다. 부천시향은 "아침 시간에 관객을 모으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작품을 매만지는 리허설 장면을 공개하고 싶지 않은 지휘자들도 있을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이달 초 발표한 '2008년 문화향수실태조사'에 따르면 1년 간 클래식음악과 오페라 연주회를 관람하는 사람은 100명 중 너덧 명꼴(4.9%)에 불과했다. 5000원~1만원짜리(또는 무료) 티켓으로 최종 리허설을 공개해 오전 또는 낮에 본격 오케스트라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보통 사람들에게 여전히 높은 클래식의 문턱을 낮추는 길이기도 하다. 특히 노인과 주부, 어린이들의 문화 향수 기회를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생각해 볼 만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