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디 사발을 말하는 세 가지 키워드

  • 성남문화재단
  • 글=노승림(음악 칼럼니스트,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입력 : 2008.11.20 11:06

조르디 사발 & 르 콩세트 드 나시옹 내한공연

스페인 출신 고음악계 거장 조르디 사발./사진=성남문화재단

'원전연주' 또는 '정격연주'

“왜 원전악기로 바로크 음악을 연주하는가는 왜 우리가 이미 오래 전에 지워지고 퇴색해 버린 교회 벽화를 다시 복원하느냐는 물음과 똑같다. 왜 복원하는가? 본래의 아름다움을 재현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 아닌가.”(조르디 사발)

사발은 지기스발트 쿠이켄, 안너 빌스마와 함께 우리 시대 원전 연주의 거장으로 손꼽힌다. 그런 그도 처음에는 모던 악기를 연주하는 첼리스트였다. 하지만 어느 날 고음악 연주 앙상블에서 비올라 다 감바를 처음 접했고, 배운지 1년 만에 그는 그 악기로 첫 리사이틀을 가졌다.

그는 현대 오케스트라를 언어로 따지자면 에스페란토어(세계 공통어를 목적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인공언어)에 비유한다. 에스페란토어는 매우 합리적인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다. 본래 언어를 에스페란토어로 번역할 때 고유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원전악기들에 대한 연구와 접근은 오래전 잊혀진 음악의 진실된 요소를 추구하는 시도이다. 음악이 본래 가지고 있던 색깔과 아티큘레이션 다이내믹은 오늘날 현대악기와 완전히 달랐다.

지금은(적어도 바로크 음악에 있어서) 시대의 큰 조류로 통하는 원전 연주도 한때는 주류를 이루는 현대악기 연주자들로부터 반발을 샀다. 시대에 역행하는 시도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사발은 “모든 음악은 동시대적(contemporary)”이라며 반박한다. 그리고 파리라는 도시를 예로 든다. 파리는 분명 유행의 첨단을 달리고 있는 현대적 도시이다.

하지만 그 도시 안에는 과거와 현대의 요소들이 동시에 공존하며 마찬가지로 파리의 정체성을 위해 중요한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원전 연주에 대해 회의를 품는 사람에게 단 한 가지 질문을 던지며 그를 제압한다. “노트르담 성당이 없는 파리를 상상할 수 있는가?”라고.

르 콩세르 데 나시옹과 함께 내한하는 조르디 사발./사진=성남문화재단

르 콩세르 드 나시옹

“이 악단의 이름을 이렇게 붙인 것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국적(Nation)이 천차만별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대다수는 라틴 출신이다.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아르헨티나, 남아메리카, 스위스 등 14개 국가에서 25명의 단원들이 모인 다국적 악단이다. 단원 개개인의 개성이 워낙 강해서 사운드가 오케스트라라기보다는 거의 대편성 실내악단에 가깝다. 제일 뒷줄에 앉은 비올라 주자조차 마치 자기가 바이올린 악장이라도 되는 양 연주한다.”(조르디 사발)

조르디 사발이 거느리는 악단은 모두 세 개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창단한 앙상블이 ‘에스페리온XX(HesperionXX)’로 21세기를 맞이한 이후에는 ‘에스페리온XXI’로 개칭되었다. 이 악단은 1974년 그의 아내이자 성악가인 몽세라 피구에라스를 주축으로 류트, 플루트, 타악기, 하프시코드 등의 악기로 편성된 중세 및 르네상스 시대 전문 악단이다.

하지만 때때로 영국의 콘소트 음악이나 프랑스 바로크 음악을 연주하는 외도를 저지르기도 한다. 그 다음에 창단한 악단이 1987년 카펠라 르와이알 데 카탈루냐로, 이름 그대로 성악 레퍼토리를 위한 보컬 앙상블이다. 카펠라 르와이알 데 카탈루냐의 창단을 계기로 사발은 바흐 B단조 미사까지 레퍼토리의 스펙트럼을 확장시켰다. 그리하여 바로크 오케스트라가 절실해졌다. 르 콩세르 드 나시옹은 그렇게, 단순한 비올라 다 감바 주자였던 사발을 지휘자로 성장시켜준, 음악 작업의 완성을 위해 만들어진 악단이다.

르 콩세르 드 나시옹은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의 사운드 트랙을 연주한 단체이다. 사발은 다국적 악단이라는 이유를 들어 명칭을 설명하지만, 사실 ‘르 콩세르 드 나시옹’이라는 이름은 루이 14세의 음악가이자 프랑스 바로크 음악의 거장이었던 프랑수와 쿠프랭의 작품인 ‘여러 나라 사람들(Les Nations, 1726)’에서 따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발은 이 악단을 데리고 이름 그대로 다양한 나라의 바로크 음악들을 완성시켰다. 스페인과 프랑스 음악에 국한되어 있던 그의 음악 영역을 독일과 영국까지 확장시킬 수 있었던 것도 이 악단의 힘이었다. 이번 내한공연에서 그는 바로 그 다양성의 저력을 다시 한 번 보여줄 예정이다. 이번에 그가 안내하는 나라는 바로 영국이다. 퍼셀의 ‘요정의 여왕’에서부터 헨델의 ‘수상음악’과 ‘왕궁의 불꽃놀이’에 이르기까지, 영국 바로크 시대의 전성기를 누린 그 화려하고 낙천적인 음악에 흠뻑 빠져보자.


조르디 사발 & 르 콩세르 드 나시옹 내한공연

일시 : 12월 21일 8시
장소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일시 : 12월 23일 8시
장소 :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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